김재홍 사회부 기자
서울시는 행사를 준비한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개막식을 방해한 원모 씨(36) 등 9명을 상대로 2억3500여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법원은 지난해 4월 “원 씨 등은 2억여 원을 배상하라”며 시와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시위는 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않고 이로 인한 피해는 시위대가 배상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원 씨 등 5명은 항소했지만 같은 해 12월 모두 기각됐다. 이때까지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는 단호했다.
이런 단호함은 시의원과 시민단체가 개입하면서 완전히 녹아내렸다. 원 씨 등이 서울시의회에 탄원서를 내자 민주당 A 의원과 참여연대 관계자가 올해 4월부터 중재에 나섰다. 양측이 합의한 중재안은 원 씨 등이 사과문을 제출하면 시는 손해배상금에 대한 강제집행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이어 원 씨 등도 상고를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원 씨 등이 사과문을 제출하자 올해 6월 손해배상금에 대한 강제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대법원에 상고한 4명도 이달 8일 상고를 취소했다. 사과문 한 장이 2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막은 셈이다.
지방재정법 86조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하지 않고 채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해당 지자체에 불리하게 효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앞으로도 이들의 재산을 조사하거나 강제 회수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법도 온정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약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온정은 그저 특혜이자 법치를 무너뜨리는 편법일 뿐이다. 서울시는 법치를 외면해도 괜찮은 기관인가.
김재홍 사회부 기자 no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