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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험담의 블랙홀

입력 | 2011-11-12 03:00:00


소리 없이 나는 천사, 정서우, 그림 제공 포털아트

이른 아침, 호수가 내다보이는 공원 벤치에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화려한 운동복을 차려입은 중년여성 둘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백발노인이 앉아 있는 벤치의 옆자리에 와 앉았습니다. 그녀들은 걸어오는 동안 둘이 나누던 얘기에 심취해 옆자리의 노인은 보는 둥 마는 둥 벤치에 앉아 자신들의 얘기에 지속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하는 모양 밥맛, 구역질, 역겨움 따위의 언어를 동원하며 손동작을 쓰거나 언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동 호수를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여자를 욕하는 것 같았습니다. 묵묵히 앉아 호수를 내다보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에게 일갈했습니다. “당신들은 자신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오직 남에 대한 험담만 입에 올리는구려. 속에 든 게 없으니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쯧쯧.”

술자리에서는 남을 험담하는 게 최고의 안주라고 말하는 사람을 더러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의 험담에 동참하거나 남의 험담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조성하는 에너지가 어떤 파장과 파동을 일으키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어서 악성 댓글이나 비방을 일삼기도 합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성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무책임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길을 갈 때 뒤를 따르며 험담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석가모니가 그 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을 차려주는가?” 험담하는 자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석가모니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손님이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그냥 돌아가면 어쩌겠는가?” 그러자 험담하는 자가 자신이 먹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가모니가 그를 일깨웠습니다. “음식처럼 자네가 한 험담도 결국 자네가 먹게 되는 것이라네.”

성당의 신부님이 젊은 이혼녀 집에 자주 드나든다고 두 명의 여신도가 말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얼마 뒤 젊은 과부가 암으로 죽은 뒤에야 신부님이 병문안과 기도를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린 두 명의 여신도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자 신부님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두 명의 여신도에게 닭털 한 봉지씩을 주며 들판에 나가 날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뒤 두 명의 여신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왔다며 신부님에게 용서를 받은 듯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이번에는 다시 벌판으로 나가 날려버린 닭털을 모두 주워 봉지에 담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들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자 신부님이 그녀들을 일깨웠습니다. “두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바람에 날려간 닭털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무책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험담이 살인보다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험담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난 진정한 말을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사색하고 모색하는 영혼의 내면에는 맑은 샘이 있어 좋은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인간에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두 배로 하라는 의미라고 일깨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말을 전하는 입, 좋은 말을 들어주는 귀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