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건축물, 인간을 담은 갤러리
○ 상수리나무를 보듬은 미술관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서 산다.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고 한옥은 마음먹고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은 과연 일상에 섞일 수 없는,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우경국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전통 건축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장점이 많은지를 알게 됐다. 그의 건축 철학엔 우리 전통을 존중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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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국은 한국건축대상과 건축가협회상을 받았으며 외국의 유명 건축 잡지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그는 “건축은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한다. “건축물에 인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어떤 행위와 사고를 하게 하고 무엇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건축가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이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요즘엔 틀에 넣고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주된 거주 형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틀에 구겨 넣어진 채 살아간다. 모든 이가 비슷한 생활양식과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짜맞춰지는 것은 아닐까. 우경국은 이런 틀에서 벗어나고자 헤이리에 직접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바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MOA(Museum Of Architecture) 갤러리다.
그에게 물었다. “본인이 직접 집을 지으면 다른 사람의 집을 지을 때보다 제약이 없지 않나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실 수 있었겠어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가 건축주가 되면 더 조건이 까다로워지죠.”
○ 집 안의 나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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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선 목이 마를 때 침실에서 주방까지 물 마시러 다녀오는 거리가 정확히 60m다. 집 안에만 있어도 확실히 운동이 된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 “무슨 집을 이렇게 만들었냐”며 투정을 했다. 하지만 적응이 된 지금은 오히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한다.
우경국은 이사 온 첫날 밤 천창(天窓)을 통해 보이던 북두칠성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올려다본 천창에는 파란 가을하늘이 담겨 있었다. 어제 내린 빗물이 창 한쪽에 고여 있다 바람에 살랑였다. 그러자 집 안 곳곳에서 하늘거리는 물결무늬가 춤을 췄다. 기계가 필요 없는, 자연 그대로의 감미로운 인테리어였다.
창문 곳곳으론 나무의 푸르름이 스며들고 있었다. 백순실미술관처럼 나무가 한가운데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에는 보이지 않는 나무가 있는 듯했다. 바람이 불자 나무 그림자들이 집 안에서 나부꼈다. 낯선 느낌. 순간 집 안에 있는 숲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숲을 담은 집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숲 속의 바람처럼 만들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