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레섬은 꽃 한 송이를 가위로 자르는 대신 한움큼씩 쥔 꽃을 팍팍 꺾었다. 거침없이 꽃을 다루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신라호텔 제공
테이블 위 뭉게뭉게 피어오른 꽃구름과 비스듬히 꽂은 꽃장식은 제프 레섬의 대표 꽃 장식이다. 신라호텔 제공
지난해 9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첼시 클린턴 결혼식의 꽃장식을 담당했던 세계적인 플로리스트 제프 레섬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프랑스 파리의 조르주상크포시즌즈 호텔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티나 터너, 오프라 윈프리, 에바 롱고리아 등 해외 유명 스타뿐 아니라 지난해 5월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결혼식 꽃장식도 담당했다.
지난해 국내에도 한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그를 소재로 한 리얼리티쇼가 방영되면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많아졌다. 2008년부터 신라호텔의 꽃장식에 대한 조언자로서 일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가 내년 새로운 결혼식 꽃장식을 제안하는 현장에 동아일보 위크엔드3.0이 다녀왔다.
사실 그는 꽃장식과 관련된 어떠한 제도권 교육도 받지 않은 플로리스트다. 1995년 미국 포시즌베벌리힐스 호텔 플라워숍에 우연히 취업하면서 꽃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9년 프랑스 파리 조르주상크포시즌즈 호텔로 스카우트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제프 레섬은 “아버지가 더는 백수로 지낼 거면 고향으로 내려와 일하라고 엄포를 놓아서 정말 ‘생계형’으로 구한 일자리가 평생직업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의 꽃장식은 기존 틀을 깨는 경우가 많다. 꽃을 사선으로 꽂는 것에서부터 꽃대를 모두 꺾어버리고 꽃잎만 활용한다든지 말이다. 그래서 그가 작업한 꽃 장식은 그저 ‘장식’을 벗어나 하나의 잘 짜여진 건축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로비를 지나 2층에 마련된 시연회장으로 올라가자 입구에는 하얀색과 살구색, 초록색의 꽃으로 잘 꾸며진 칵테일 연회장이 마련돼 있었다. 레섬이 내년 결혼식 트렌드로 제안한 것이 바로 ‘칵테일파티’다. 최근 국내에도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예비 신랑신부가 늘면서 미국이나 유럽같이 파티처럼 즐기는 하우스웨딩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연회장 안에는 순백의 꽃장식부터 노랑 황금 분홍 보라 등 형형색색의 꽃구름들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테이블은 좀처럼 결혼식장에서는 보기 힘든 보라색 꽃장식이다. 보라색 꽃들은 통나무로 만든 꽃병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전원적이면서도 풍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레섬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기존 빨강색이나 갈색 대신 보라색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파리에서 일을 시작했을 당시 동네 꽃집 창 너머로 우연히 본 검붉은 블랙뷰티 장미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요즘 유럽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꽃인데 한국 화훼시장에서 그걸 발견하고 얼마나 기쁘던지요.”(레섬)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