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로 태어나 고맙고 네가 있어 행복했다”“온 가족이 ‘수고했다 사랑한다’ 그말 들은뒤 편안히 눈 감아…아들 떠나 보낸 아픔 덜어준 부산시민-야구팬 애정 감사”
고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어머니 김정자 씨가 아들 사진이 담긴 액자를 쓰다듬고 있다. 김 씨는 요즘 큰아들의 사진을 보지 않으면 잘 수가 없어 마루에서 잠을 청한다. 부산=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김 씨는 요즘 마루에서 잠을 청한다고 했다. 벽에 걸린 큰아들의 사진을 보지 않으면 잠이 안 오기 때문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마음은 가시에 찔린 듯 수시로 아프다고 했다.
“동원이가 저세상으로 간 게 지금도 믿어지질 않아요. 하지만 아들을 향한 부산 시민과 야구팬들의 애정이 저의 아픔을 보듬어줬어요. 아들도 하늘에서 지켜보며 고마워할 거예요.”
김 씨는 교육자 출신이다. 45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고 교감으로 은퇴했다. 요즘도 그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닌다. 매주 복지관에서 장애어린이에게 예절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고 노인을 대상으로 한글 선생이 돼 준다. 그는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최 전 감독은 생전에 ‘외골수’ ‘고집불통’으로 불렸다. 평소 바른말을 잘했던 탓이다. 그러나 김 씨는 그가 믿음직하고 예의바른 큰아들이었다고 했다. 네 살, 다섯 살 터울인 두 남동생과 고교 때까지 한 방을 쓰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말을 거역한 적도 없었다.
고인은 8월 초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8월 말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3일간 집에 머물며 “정말 편안하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 씨는 “14일 새벽 동원이는 눈을 뜨진 못했지만 의식은 있었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수고했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떴다”고 전했다.
김 씨는 1984년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동원이는 입이 약간 돌아갈 정도로 지쳐 있었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지는 걸 싫어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더 가슴이 아팠죠. 롯데가 우승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해요.”
“동원아, 내 아들로 태어나 고맙다. 네가 있어 행복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멋있게 살았어. 이제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렴.”
부산=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