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이 담긴 한 컷의 희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까지 모두 손수하는 ‘암실’ 회원들의 작품. 1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로 갤러리 이룸에서 전시된다.
○ ‘암실 폐인’
이 사람들은 필름카메라를 찍는 모임 ‘암실(www.amsil.co.kr)’ 회원들입니다. 단지 아날로그 필름을 써서 필름카메라로 피사체를 잡는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현상과 인화까지 손수 합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찍고, 자신의 눈과 손으로 결과물을 뽑아냅니다. 찍은 필름을 전달한 뒤 현상소 아저씨 손에 나머지 처분을 맡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진 찍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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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스터디그룹처럼 공부하고 사진 품평회도 갖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을 흥분시키는 건 암실 작업입니다. 필름이 암실에 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듭니다. 중형 카메라의 경우 16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 통을 다 써야 합니다. DSLR라면 3초에 다 소진할 분량입니다. 이 때문에 한 컷, 한 컷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현상할 때 어떤 약품을 어떻게 쓰고 빛은 얼마만큼 줄지, 인화지는 어떤 질감을 사용할지를 다 생각하고 촬영에 들어갑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찍은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진작가 앤설 애덤스가 말한 이른바 ‘예견(visualization)’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필름 서너 통을 다 써야 암실로 갑니다.
암실은 약품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몸에 밴 냄새를 “여성들이 싫어한다”는 회원도 있습니다. 5시간 동안 인화작업을 해서 2장을 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이 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3년여 전부터 회원이 됐지만 사진 경력은 30년이 넘는 김옥경 회원(64)은 “암실 폐인이 되는 거지” 하며 웃습니다. 김 회원은 “새벽에라도 암실로 가고 싶다”며 “이것도 하나의 병”이라고 말합니다. 병에 걸려도 흐뭇한 건, 그런 기다림을 거친 뒤 마지막 프린트가 나왔을 때의 희열이 만만치 않은 까닭입니다.
○ 휴식과 치유
이들 역시 DSLR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가 쉬워지니 사람과 사물을 담아 낼 때의 고민도 그만큼 얕아지는 건 아닌지 염려하기도 합니다. 필름카메라로 잡아야만 특별한 순간이라는 아집을 부리고자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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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때 화제가 잘 되지 않는 게 바로 카메라 장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오석환 회원(46)은 “장비보다는 사진을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장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사진이라는 달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장비라는 손가락에 더 신경을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이들의 기다림이 어떤 작품을 낳았을지 궁금하시다면 한번 찾아가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암실 회원들의 다섯 번째 사진전시회가 1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로 갤러리 ‘이룸’(www.galleryillum.co.kr·02-2263-0405)에서 열립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