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누리꾼의 치사한 발목잡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원순은 양말 속까지 탈탈 털리는 검증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해어진 구두와 닥스 양말의 부조화엔 어떤 이중성이 있다. 아마도 부인의 안목으로 산 양말일 가능성이 큰데 그의 부인은 인테리어업체 대표다. 2009년 국회에선 “아름다운가게의 인테리어를 강남구 신사동에서 인테리어 회사를 하는 박원순의 부인이 도맡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원순 측은 아름다운가게 초기 공사 선금 줄 여유가 없어 아는 업체에 맡긴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시민운동가와 인테리어업체 사장 부인은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를 일으킨다. 낡은 점퍼를 입는 중국의 ‘서민총리’ 원자바오와 중국보석협회 부회장인 부인이 반사적으로 떠오른 내가 싫어질 판이다.
혁명적 개혁을 위한 타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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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이 좋은 지도자의 자질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유권자는 ‘합리적 진보’로 알려진 박원순의 모습이 혁명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타협일 수도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2006년 6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도하며 친북 용공사상을 유포해온 박원순이 최근 탈이념적 행보를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그가 아름다운재단 등을 만든 것도 좌파적 이미지를 줄이고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박원순을 대선후보 히든카드로 꼽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무렵이다. 박원순은 “정치에 나간다면 말려 달라”며(2006년 9월)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여당 간판으론 당선이 어렵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2002년 인터뷰에서 “한때 정치도 생각했다. 지역 주민한테 매년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할 만큼 정치에 관심 많은 그다. 어찌 보면 서울시장 출마 선언은 늦은 감마저 있다.
박원순은 앞뒤가 다른 말을 하면서도 너무나 진지하고 진정성 있게 하는 바람에, 듣는 이가 부조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강점이 있다. 참여연대의 전현직 임원만 158명이 노무현 정권 고위직과 각종 위원회에 진출했다는 조사가 나온 뒤에도(2007년) “시민사회는 권력과 독립돼 있고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고 말한 게 한 예다(2008년). “시민운동 하다 공기업 감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비판하고선(2006년), 며칠 전 자신의 포스코 사외이사 활동에 대해선 “저는 오히려 사외이사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문제 제기를 악의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아름다운재단에 대해서도 그는 “공익재단으로서 (재벌)후원을 받아서 늘 공정하게 공익을 위해 썼다”고 강조했다. 2010년 배분사업비 66억 원 중 가장 많은 부분(28.3%·19억 원)을 차지한 시민단체 지원 중엔 참여연대는 물론이고 평택 미군기지 동영상을 만든 평택평화센터, 학생인권조례 만들기에 앞장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도 들어 있다. 돈을 낸 기업 중 “연애탄압 학칙 폐지”까지 외친 아수나로가 공익적이라고 볼 기업이 있을지 진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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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편향 역사硏 이사장 전력도
무엇보다 박원순이 ‘옳다’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유권자는 분명히 알 권리가 있다. 역사 좌편향화의 한 산실로 지목되는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이었던 그가 지금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하다. 2003년 대선 때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노무현의 말에 감동해 이념이나 국가관을 캐묻지 않고 표를 던진 국민이 적지 않다. “그럼 가난한 사람한테 (후원)받느냐”는 박원순의 논지이탈 화법이 그때와 너무나 닮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