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 상승세,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초고속
정부는 최근 환율이 2008년 9∼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 9월 1일 종가 기준으로 1100원대에 올라선 환율이 1200원대로 올라선 것은 같은 달 30일로 100원 오르는 데 한 달 걸렸다. 하지만 이달 14일 1100원대로 올라선 환율은 불과 6영업일 만에 중장기 지지선인 1200원을 위협하고 있다. 환율 상승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의 경기둔화가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확충이 급해진 유럽계 금융회사들이 증권시장에 이어 지난달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발을 빼고 있는 점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우리선물 변지영 연구원은 “원화 약세가 가속화되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원화 채권 매도를 확대할 개연성이 높아진다”며 “환율이 1200원대까지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당장 물가에 비상이 걸리면서 서민 고통이 가중된다. 원유와 원당, 원면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뛰고 공산품이나 기계류 등 수입 공산품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1년 경제 전망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연간 0.8%포인트 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환율 상승이 지나치면 외화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환율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 국제 투기자본이 역외선물환시장(NDF)에서 환율 추가 상승에 투기해 변동폭을 키우고, 이로 인해 환차손을 우려한 해외자본이 증권시장과 채권시장에서 급격히 빠지면서 환율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해외 채무에 대한 이자부담이 급증하고 금융권과 기업의 외화자금 조달에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경제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환율이 급등하자 IMF 연차총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출장 중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신제윤 1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떠한 방향이든 시장에서의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제금융시장을 예의주시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환율 폭등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대외적 위기요인에 따른 것으로 정부가 위기대응의 독립변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이됐다가 다시 더 큰 금융위기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환율 주가 수출 등 경제의 모든 변수에 위기가 반영되고 있는데 정부는 힘에 부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