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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100년 전 극단의 99년 전 초연작 풍자적 재구성, 객석은 웃음꽃

입력 | 2011-09-20 03:00:00

연극 ‘육혈포 강도’
대본★★★★ 연출★★★☆ 연기★★★ 무대★★★




연극 ‘육혈포 킬러’에서 부실 저축은행의 명단을 권력자들에겐 몰래 알려주면서 국민들에게 비밀로 했다가 ‘육혈포’ 킬러에게 목숨을 잃는 금융감독관(박기덕).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제공

코미디 영화 제목으로 패러디된 ‘육혈포 강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극단으로 꼽히는 혁신단의 대표작이다. 올해는 그 혁신단 창단 100주년이다. 한국연출가협회는 이를 기념해 한국 연극 100년 재발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8∼18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육혈포 강도’를 공연했다.

공연은 2개의 독립된 연극으로 구성됐다. 1부 ‘임성구와 혁신단’(김은성 작·김석만 연출)은 과일 행상을 하다 혁신단을 창단한 임성구(미상∼1921)를 중심으로 1912년 초연됐던 ‘육혈포 강도’의 내용을 극 중 혁신단원들의 코믹한 연습 장면으로 재구성했다. 2부 ‘육혈포 킬러’(김재엽 작·연출)는 ‘다이렉트 액션’이란 극단을 운영하는 21세기 독립예술가 임성구의 좌충우돌 코미디다.

연극은 반복과 차이를 통해 재미를 끌어냈다. 1부가 연극계에서도 실체를 제대로 모르던 혁신단 구성원과 육혈포강도의 내용을 짐짓 근엄한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그려내 잔잔한 웃음을 유발했다면 2부는 SF코믹활극의 수법을 차용한 현실풍자로 폭소를 끌어냈다. 두 작품에 같은 배우들이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점도 이를 통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권총강도 시마즈 사다키치’라는 일본 신파극이 한국적인 ‘육혈포 강도’로 변모하고 다시 ‘육혈포’라는 최신 총기로 무장한 자살테러단에 포섭된 임성구의 연극이 현실이 되는 ‘육혈포 킬러’로 변신한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 하듯 연극운동을 펼친 100년 전 임성구와 빚더미에 올라서가며 순수예술 정신을 지키려는 100년 뒤 연극인들이 묘하게 공명한다. ‘육혈포 킬러’의 임성구(백운철)가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 공연 보러 오지 않는 관객들”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빈자리 많던 객석이 웃음바다가 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