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로커 ‘예능 대세’ 박완규
박완규에게 록이란 햇살이다. 그는 “햇살이 있어야 상록수도 자랄 수 있다”며 “전에는 해가 뜰 때 자고, 해가 질 때 눈 떴다. 다시 햇볕 아래서 노래하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세훈 동아닷컴 기자 ohhoony@donga.com
선글라스, 찰랑대는 긴 생머리, 루스핏 카디건에 찢어진 화이트 스키니 진을 입은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예능 대세’ 록 가수 박완규(38)다.
올해 1월 록그룹 ‘부활’의 프로젝트 앨범 머릿곡 ‘비밀’로 가요계에 복귀한 그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을 따라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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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는 “성대가 망가져 폐인처럼 살던 나를 태원 형님이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부활 탈퇴 후 소속사 계약 문제 등이 얽혀 생활고를 겪었다. ‘천년의 사랑’의 히트에도 그는 한 달 100만 원도 벌기 어려웠다. 1994년 결혼한 아내와도 올해 초 헤어졌다.
“닥치는 대로 노래 부르다 보니, 예전에 다친 성대가 부었어요. 병원에도 안 가고 막 살았죠. 그런 제게 태원 형님이 찾아왔어요. 막무가내로 ‘비밀’을 부르라고 했지만 목이 아파서 한 소절도 부를 수 없었어요.”
김태원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며 그를 끌고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 성대는 엉망이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20년간 노래 연습하며 만든 성대 근육을 잃을 수 있다기에 거절했다. 그 대신 약물 치료를 했다. 노래 못한다는 망신을 당해도 스테로이드 처방은 받지 않았다. 두 달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태원 형님이 위암 수술을 받은 때였어요.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죠. 그 몸으로 그렇게 열심히 살다니…. 치료 두 달 만에 목소리의 60%가 돌아왔어요. 9월 안에 95%를 회복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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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구구절절 인생사에 많이 울었죠. ‘울보 로커’라고 놀림도 받았지만 기쁨도 얻었어요. 84세 노강진 할머니가 음정, 박자 지켜가며 노래하세요. ‘저분의 반 토막도 안 산 나는 힘들다고 포기하려 했구나!’ 제 스승이 기가 막힌 시점에 절 끌고 간 거예요.”
로커가 되기 전, 박완규의 삶은 고달팠다. 1973년 충북 청원에서 가난한 집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장래 희망은 법관.
그러나 ‘가난한 수재’가 꿈꿀 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위로 두 자식을 어렵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낸 아버지는 그에게 장학금을 받고 실업계 학교에 들어가라고 했다. “막내야, 힘들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머니는 그를 붙들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집안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막내는 꿈을 잃고 음악에만 매달렸다. 그는 “아버지 가슴에 평생 한(恨)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박완규에게 김태원은 “스승이자 애인, 친정 엄마”다. “형님이 가족이 있는 필리핀에 가면 보고 싶어 빨리 오라고 전화해요. 엄마 맞아요. 딸이 고생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친정 엄마. 여자들이 왜 친정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지친 몸으로 엄마 밥을 찾아간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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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만 해도 한 곡 더 부르라고 하면 걱정했어요. 이제는 달라요. 나는 희망을 잃은 게 아니었어요. 잊은 것이죠. 방황하는 분이 있다면 기억해 주세요. 잃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