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은 우리 정당정치가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부 계파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동맥경화에 걸려 버린 느낌이 든다. 여야가 서로 으르렁대면서도 국회의원 세비(歲費) 인상 같은 공동 이익에 대해서는 철저히 담합하는 정치 행태에 국민이 매를 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안 씨가 “정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출마 의사 표명도 안 했는데 정치권이 흔들릴 정도라고 한다면 이렇게 허약한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황당하다”고 조롱할 정도가 됐다.
1958년부터 6년 동안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정치의 격변기를 지켜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소용돌이 정치’라고 평가했다. 국가와 개인을 이어주는 정당 같은 중간 단체가 역할을 못해 소용돌이와 같은 극단적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안 씨의 돌풍은 우리 정당정치의 지리멸렬 속에서 생겨났다.
김영삼 김대중 씨는 제왕적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여 당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정치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쇄신하기를 바라는 민심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요즘 정치권은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인재 충원 기능을 상실했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복원돼야 헌법에 명시된 대의(代議)민주주의를 구현하고 ‘길거리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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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의 핵심 기능은 국민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면서 민심과 소통하는 일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정당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면 여야 정치권은 공멸의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추석 연휴를 맞아 여야는 전국 각지에서 생생한 민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필요하다면 모든 걸 허물고 새로운 당을 만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안철수 돌풍이 우리 정당정치에 던지는 과제다. 여야는 정당민주주의를 지킬 책임을 통감(痛感)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