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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고비 넘기며 NC 선발 테스트 본 32세 투수 정성기

입력 | 2011-09-06 03:00:00

메이저리그행 →군입대 →다시 미국행 →국내로…
입단테스트 받으러 가던 길, 버스가 굴렀다
구급차에 탈 순 없었다, 후배차 불러 몸을 실었다
다음날 죽을 각오로 던졌다,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4일 전남 순천을 떠난 버스가 남해고속도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길에 버스가 미끄러지더니 두어 바퀴를 굴렀다. 버스는 인근 전봇대에 부딪히고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가 들렸다. 버스 안에는 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 출신 투수 정성기(32)도 있었다. 고향 순천에서 프로야구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경남 창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몸부터 먼저 확인했다. 앞자리에 앉은 승객 중에 크게 다친 사람이 몇몇 있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았던 덕분인지 근육이 조금 놀랐을 뿐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병원에 가는 게 순서였지만 구급차에 오르지 않았다. 이번 트라이아웃이 그에게는 마운드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가져온 승용차에 몸을 싣고 창원에 도착했다. 그는 온전치 않은 몸을 이끌고 5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서 몸이 부서져라 공을 던졌다. 파란만장과 우여곡절로 점철된 그의 야구 인생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한 이틀이었다.

○ 첫 번째 위기

과거에 정성기의 이름이 신문에 크게 실린 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2년 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에 입단했을 때다. 애틀랜타는 동의대 4학년 사이드암스로 투수 정성기를 영입했다. 불과 4년 전 한국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조차 지명 받지 못했던 선수가 갑자기 해외파가 돼 화제가 됐다. 그해 루키리그에서 뛴 정성기는 2003년 싱글A로 승격해 1승 4패에 18세이브를 올리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병역비리에 연루되며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에 이름이 실렸다. 꼼짝없이 군대를 가야 했다. 그것도 현역으로 최전방인 강원 화천에서 소총수로 복무했다.

어느 날 그가 야구 선수였다는 얘기를 들은 한 간부가 “돌 한 번 던져 봐”라고 했다. 돌을 주워 힘껏 던졌는데 부대 앞 작은 산을 넘겨버렸다. 소문이 나면서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이 차례로 그가 돌 던지는 걸 보러 왔다. 그날 하루만 100개 넘는 돌을 던졌다. 야구를 포기할 뻔했던 그는 이렇게 매일 돌을 던지며 야구 선수의 꿈을 이어갔다.

○ 두 번째 위기

군 복무와 휴식 등으로 3년을 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이 좋았다. 그는 2007년 싱글A 마이틀 비치에서 22세이브에 평균자책 1.15를 기록하며 애틀랜타 산하 싱글A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시즌 말미에는 더블A 미시시피로 승격됐다.

2008년에는 의욕이 너무 앞섰다. 메이저리그에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했고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졌다. 그래도 2승 2패 6세이브에 평균자책 4.41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그런데 그해 말 그를 챙겨주던 구단 고위층이 대거 교체됐다.

정성기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행을 결심했더니 해외파 선수는 2년간 뛸 수 없다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규정이 앞을 가로막았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그가 한국에서 뛸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또 쉬었다. 한창 선수로 뛰어야 할 시기에 군 복무와 규정에 걸려 5년 넘게 세월을 보내야 했다.

○ 세 번째 기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놀 수만은 없었다. 모교인 순천효천고와 동의대에서 틈틈이 어린 후배들과 땀을 흘렸다. 그래서인지 그를 눈여겨본 구단은 여럿 있었다.

올해 2월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의 마이너리그 경력을 높이 산 니혼햄이 먼저 요청했다.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일본 마운드는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

그리고 지난달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내심 기대했지만 결국 정성기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경력을 높이 산 NC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이번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됐다.

정성기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가대표로 대만의 마운드에도 서 봤다. 하지만 정작 한국 프로야구 마운드에는 서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못 이겨낼 것은 없는 것 같더라. 야구 인생이 끝나기 전에 꼭 한국 마운드에 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이 구성된 NC는 정성기의 경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어 입단이 유력하다. NC가 1군 리그에 참가하는 2013년 그는 한국 나이로 35세가 된다. 한국 프로야구는 어쩌면 30대 중반의 신인 선수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NC 트라이아웃의 최종 합격자는 8일 발표된다.

창원=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