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숨기려 하진 않았다다만 기억이 나를 속였을뿐
8월 4일 영국에서 출간된 반스의 열한 번째 소설 ‘죽음의 감각(The Sense of an Ending)’은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날카로운 재치와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60대 노인인 토니가 고교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토니는 대학 졸업 후 적당한 직장을 얻고, 평범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도 한 명 얻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토니가 그의 평범하지 않은 친구들, 아드리안과 베로니카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토니의 고등학교 동창 아드리안은 10대 때부터 이미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역사와 철학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토니와 그의 친구들이 사춘기 소년답게 주로 성(性)에 관심을 가졌던 반면 아드리안은 ‘왜 영국인들은 심각한 주제에 대한 고민을 회피하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고교 졸업 후 아드리안은 케임브리지대로, 토니는 브리스틀대로 각각 진학했고, 토니는 베로니카라는 여자 친구를 만난다. 어느 날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된 토니는 그녀의 속물적인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모욕을 받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만다. 그의 열등감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베로니카와 토니가 결별한 직후 아드리안과 사귀기 시작한 것이었다. 토니는 아드리안과 절교를 선언했지만 결국 아드리안과 베로니카는 결혼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드리안은 그 후 욕실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한다. 그것이 토니가 아드리안과 베로니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토니가 일부러 자신의 과거를 숨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왜곡하고 수정한 뒤, 그것이 진짜 일어났던 과거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반스는 이쯤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어쩌면 토니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의 과거를 더 유리한 쪽으로 왜곡해 오지 않았을까? 옵서버지는 “젊은이들의 성, 억제, 계급, 후회, 그리고 잘못된 회상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언 매큐언의 ‘체실 해변(Chesil Beach)’과 비교될 만하다. 다만 ‘죽음의 감각’은 더욱더 지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라고 이 소설을 극찬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