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두 감독은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자타가 공인하는 비주류들이다. 재일교포 2세인 김성근 감독은 가난과 차별로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냈다. 20대 초반 학연도 지연도 없는 한국으로 귀화한 후엔 ‘쪽발이’로 불리며 “일본보다 더 힘든 한국 생활”을 했다. 김기덕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폐차장, 단추공장, 건설현장을 옮겨 다녔고, 33세가 되도록 영화를 본 적도 없다. “영화란 대학을 나와야 볼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의 작업 스타일도 똑같이 주변적이다. 주류 영화들이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을 내세워 관객을 유혹하는 동안 김기덕 감독은 ‘모두가 미워하는 인물’을 내세워 거친 영상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높은 개런티와 스케줄 문제가 걸리는 톱스타들과는 촬영할 수도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벌떼야구’도 고만고만한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치러야 하는 형편에서 다듬어진 스타일이다. 그가 감독을 맡아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 스타 선수가 많은 삼성이었다. 그는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엘리트 의식이 강한 그들과 잡초처럼 살아온 나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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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감독이 세상과 불화하는 진짜 이유는 돈이 있어야 야구도 하고 영화도 찍는 현실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성근 감독은 기업의 이미지와 흥행을 강조하는 구단에 “야구를 이용만 하려 든다” “구단은 죽어도 야구는 죽지 않는다”며 맞서왔다. 김기덕 감독도 2009년 외국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폼 잡아도 결국 썩은 자본주의로 모이는 물고기 떼”라며 자본에 휘둘리는 영화판을 비난했다.
하도 여러 번 ‘잘려’ 이력서 칸이 모자란다는 김성근 감독은 쉬고 있지만 성적 부진으로 애가 타는 어느 팀이 언제 ‘재건의 달인’에게 손을 내밀지 모를 일이다. 그때가 되면 그는 다시 자기만의 야구를 선보이며 야구와 리더십에 대해, 그리고 모난 돌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의 역량에 대해 끝없이 불편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3년간의 은둔 생활 끝에 ‘아리랑’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도 똑같이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져놓았다. 두 이단아는 여전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야구는 야구다”라고, “영화는 영화다”라고.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