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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IT코리아… SW약자 전락에 HW강자 위상도 흔들

입력 | 2011-08-19 03:00:00

■ 글로벌 패러다임 못따라가 소니 전철 밟을 우려




‘소니의 오늘이 삼성의 내일인가.’

최근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들이 한국 기업들의 약진에 밀려 TV 사업 철수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전자업계는 이 소식을 마냥 반가워하지 못하는 신세다.

구글이 한때 통신 및 휴대전화의 ‘절대강자’였던 모토로라를 삼킨 것처럼 정보기술(IT) 산업의 생태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이 소프트웨어에서 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동안 강점으로 내세우던 ‘하드웨어’ 분야도 심각한 위기라는 점이다. 완제품 분야에선 올해 TV 시장이 당초 예상과 달리 크게 부진하고, 액정표시장치(LCD) 등 부품 분야도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구글, 애플 등은 스마트폰에 이어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IT 생태계를 통째로 접수하려 하고 있다.

○ 일본 전자 ‘명가’의 추락

소니는 올해 들어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TV사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750억 엔의 손실을 본 소니의 TV사업 부문은 올해까지 8년 연속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신세이다. 55년 TV 명가 히타치는 최근 일본 내 TV사업본부를 아예 없앤 뒤 대만과 중국 업체에 외주를 주고 브랜드만 남기기로 했다. 이미 파나소닉은 전체 직원의 10%가 넘는 4만 명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면서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전자업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엔화 초강세는 일본 전자업계의 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일본의 전자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업계는 과거 수차례 구조조정 및 합종연횡을 했지만 생산성과 사업구조 자체는 크게 개선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이 변할 때 우물쭈물하다 변화가 늦었고 최근 ‘모바일 혁명’에서도 아이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 한국, 일본 실수 되풀이하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열심히 일본 제품을 베껴 싼 제품을 만들어내던 한국은 이후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로 기술력을 끌어올리며 시장을 넓혀 왔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TV 시장 1위로 올라섰으며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LG전자도 TV 세계 2위, 에어컨 1위 등 글로벌 전자업계로 성장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IT 업계의 패러다임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잘나가던 회사가 새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장세진 싱가포르국립대 석좌교수는 “10년 전까지 세계를 석권했던 소니 등 일본 회사 자리에 현재 삼성과 LG가 앉아 있다”고 분석했다. 소니는 1990년대 후반 트리니트론 방식의 브라운관 TV 성공에 안주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LCD TV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1996년 LCD TV 대신 브라운관 공장을 설립하는 악수를 뒀다.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에서 성공했던 삼성과 LG가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새로운 ‘모바일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일본 회사들이 기술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스펙 경쟁에만 주력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경시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다. 최근 국내 업체들의 TV 부진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스마트 TV, 3차원(3D) TV를 만들어 기술 경쟁을 벌이면서 제품 가격은 올라갔는데 경기침체 상황에서 고객들이 가격에 비해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컨버전스 전쟁 시작… 클라우드도 HW 위협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서 보듯 글로벌 규모에서 ‘컨버전스(융합)’ 전쟁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IT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도 국내 하드웨어 산업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PC마다 프로그램을 깔고 데이터를 저장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터넷 네트워크상에서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만 찾아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급되면 개인들의 하드웨어 수요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수준을 넘어서는 글로벌 ‘초대형(메가) 경쟁’이 시작됐다”며 “엄청난 내수시장과 유학파 출신의 우수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의 부상도 한국 전자업계엔 거센 도전”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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