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보이체크’ -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씨명동예술극장 ‘우어파우스트’ - 다비트 뵈슈 씨
《연출은 유럽 거물 연출가 두 명. 출연진은 한국 배우들. 작품은 정통 독일 연극.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른 두 가지 무대가 펼쳐진다.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의 연출을 맡은 폴란드의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씨(56)와 괴테의 초기작 ‘우어(Ur)파우스트’의 연출을 맡은 독일의 다비트 뵈슈 씨(32)를 13, 16일 차례로 만났다. ‘보이체크’는 국립극단에서, ‘우어파우스트’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제작한다》
■ “코미디로 돈을 벌지만 비극에서 돈을 잃어요”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씨가 자신이 연출하는 ‘보이체크’의 공연 포스터를 가리키고 있다.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배우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맞다. 그래서 배우를 잘 이해한다.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의 배우들은 연출가의 말을 잘 듣지만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배우들은 배역과 장면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연출가와 싸우며 그런 과정을 통해 연출의 균형을 잡아 나간다. 한국 배우들은 예의 바르고 연출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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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한국 관객을 의식해 변화를 준 점이 있나.
“‘보이체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문화 차이를 고려해 독일 원작에선 주인공이 군인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태평양 인근 나라의 공장 노동자로 바꿨다.”
―한국인에게 폴란드는 낯선 나라인데….
“폴란드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다. 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여권 없이 유럽연합의 어느 나라든 갈 수 있다. 22년 전 민주화가 된 후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연극계의 교류도 활발하다. 그 대신 폴란드 연극만의 색깔은 약해졌다. 예전에 극장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지만 이제는 사회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핵심 영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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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예술이 다수가 향유하는 대상인 적은 없었다. 1년에 극장을 한 번 이상 가는 유럽인은 7%이다. 단, 북유럽은 60% 정도로 높은 편이다.”
―폴란드에선 좋은 공연을 어떻게 계속 무대에 올릴 수 있나.
“정부 지원 시스템이 있다. 약 100개의 공공 연극단체가 있고 내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극단도 그중 하나다. 대극장 1개, 소극장 2개를 소유하고 있고 단원 30명이 연간 20편의 공연을 올린다. 재정의 50%는 입장 수입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지원을 받는다.”
―대중성은 신경 안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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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는 23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이호재 정상철 서상원 서주희 박완규 등이 출연한다. 2만∼5만 원. 02-3279-2233
■ “순수연극 관객 없어도 당신이 맞다는 신념을”
‘우어파우스트’ 국내 초연작의 연출을 맡은 독일 연출가 다비트 뵈슈 씨. 지구본과 십자가는이번 공연에 쓰일 소품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한국에 대한 인상은….
“대학로가 인상적이었다. 독일은 도시별로 극장이 있지만 대학로처럼 극장이 집중된 곳은 없다. 코미디, 현대극, 로맨틱 뮤지컬, 진지한 연극 포스터가 같이 붙어 있더라. 그만큼 다양한 기호의 관객을 모을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연극은 젊은층에게 인기가 있다고 들었다. 영화를 많이 본 게 도움이 됐나.
“영화 연출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장면 전환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영화적이다. 연습하는 내내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다가 작품을 마무리할 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영화의 마지막 편집 작업과 비슷하다.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중시하는데 독일에서 연극은 ‘지적인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지루하다. 나는 관객이 내 연극을 보고 한 번쯤 웃고 한 번쯤 울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 작업을 많이 했는데….
“고전의 매력은 평생에 걸쳐 매번 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창작극은 한 번 연출하면 ‘이걸로 됐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공연계를 어떻게 보나.
“진지한 연극과 재미를 추구하는 연극 사이의 경계가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배우도 TV나 영화 작업을 하면서 연극도 하는 등 경계를 넘나든다. 반면 독일의 연극배우들은 연극만 한다. 독일 연극계는 아무리 작은 소도시라도 극단과 극장이 있고 재정적 지원이 따른다. 티켓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실험의 여지가 많다. 반면 한국은 티켓을 팔아서 재정적인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대로는 순수 연극이 망한다고 걱정하는 연극인이 많다.
“‘참고 견뎌라. 당신이 하려는 얘기가 맞다는 믿음을 갖고 관객이 없더라도 신념을 잃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도 보면 블록버스터가 있는 반면 소수의 관객만 찾지만 감동이 큰 영화도 있다. 가끔 흥행도 되고 감동도 주는 영화도 있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3차원(3D) 영화, 게임 등 온갖 오락거리가 넘쳐나는데 연극이 살아남을까.
“연극의 전망은 밝다. 수세기 동안 연극은 발전하고 진화해 오면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연극에는 눈으로 보는 즐거움, 대사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이 있다.”
우어파우스트는 9월 3일∼10월 3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파우스트 역의 정보석을 비롯해 이남희 정규수 이지영 김준호 윤대열 등이 출연한다. 2만∼5만 원. 1644-2033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