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 두루뭉술… 속빈강정…
실제로 지난해 서울의 한 주요 대학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자연계열 학과에 지원한 A 군(18)은 1단계 서류평가점수가 1000점 만점에 987점으로 최종합격자의 평균점수보다 40점 가까이 높았지만 최종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면접에서 수학 개념을 묻는 사정관의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크게 감점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면접은 입학사정관전형에서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지만 적잖은 학생이 면접에 대한 오해와 준비 부족으로 면접 현장에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인다. 주요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면접에서 실패하는 수험생 유형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1. 동문서답형 : 질문의 속뜻을 파악 못한 ‘사오정’
면접에서 사정관이 던지는 질문에는 학생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질문에 담긴 평가자의 의도가 뭔지 우선 파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엉뚱한 대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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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학교에 지원했는가” “많은 사범대학 중 우리학교 사범대에 지원한 이유는?” 같은 지원동기를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 이런 질문에는 지원자의 경험과 성향을 대학의 인재상과 건학이념, 그리고 지원 학과의 비전 등과 연결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이 적합한 인재란 사실을 어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가 해당 학교와 학과를 무조건적으로 치켜세우며 애정 표현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면접장에서 대학 교가를 부르겠다고 하는 지원자도 있다.
김수연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자기소개서에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어 존경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감명받았던 상황에 대한 설명과 자신이 얼마나 해당 인물을 존경하는지에 대해 설명 하는 학생도 있다. 감정적인 답변보다는 그 경험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2. 선언형 : 근거 없이 주장만 하는 ‘밑 빠진 독’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학생도 적잖다.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가 대표적 예. 학생들은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 △창의적이다 △친구가 많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구체적 경험에서 나오는 근거가 없으면 오히려 활동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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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활동을 했다거나 특정대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원자의 자질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나는 학급반장을 하며 리더십을 키워왔다”가 대표적 사례. 입학사정관 전형 리더십 전형에서 학급반장처럼 대부분의 지원자가 가진 경험을 내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 활동 사실 자체보다는 활동에서 뽑아낸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김창민 한국외국어대 입학사정관은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 내용을 기초로 해 지원자가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데도 추가적 질문을 2, 3개만 이어가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형과 면접관의 특성에 따라 한 가지 활동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말문이 막히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3. 청산유수형 : 말만 유창한 ‘속 빈 강정’
유창하게 말을 한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일부 학생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끊김 없이 이어 나가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정관이 묻지 않은 내용까지 3분 이상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자신이 다른 질문을 받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묻는 말에만 짧고도 분명한 근거로 답변하고 다음 질문의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질문과 답변이 많이 오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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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창 한양대 입학사정관은 “사정관들은 지원자의 유창한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답변 내용에 집중해서 평가한다”면서 “학생들은 답변이 끊어지지 않고 진행되었으면 면접을 잘 봤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지만 유창하게 말하는 데만 신경 쓰면 오히려 중언부언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지적했다.
▶입학사정관전형 면접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2면에선 합격을 부르는 면접 대비 노하우가 소개됩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