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국제부 기자
여기에 조국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국민들의 애국심은 정평이 나 있다. 2년 전 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88%가 “조국이 자랑스럽다”고 했으며 95%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싸우겠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은 장기 독재와 왕정 체제로 지탱돼 온 이웃 국가들과 달리 의원내각제를 중심으로 한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자부하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에서 국민들이 “생활고를 못 견디겠다”며 3주째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세를 감당 못하겠다며 20대들이 7월 중순 거리에 텐트를 치며 촉발된 ‘텐트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건국 이래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공익 우선 정신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택난과 폭등하는 집값. 생활고에 이혼율이 높아지고 독신계층이 늘며 ‘나 홀로 가구’가 많아졌지만 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은 늘어나지 않았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서안지구에 지은 정착촌의 혜택은 정부와 결탁한 극우 종교단체에 돌아가고 있다.
우파인 리쿠드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으며 부자들에게 감세 정책을 펼친 것도 서민들을 자극했다. 최창모 건국대 교수(히브리어과)는 “1980년대 부유층 소득의 60%를 세금으로 거둬들였지만 지금은 4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며 “중산층으로선 3년간 군대까지 다녀왔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는데 돌아오는 건 팍팍한 살림살이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텔아비브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들이 정부를 향해 외치는 구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혁명을 외친) 스탈린과 체 게바라가 우리의 상징은 아니다.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이 우리의 상징이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이 이번 시위가 단순히 치솟는 물가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외교와 군사안보에 모든 역량을 쏟느라 서민경제를 외면했던 정부의 무심한 태도에 국민들의 애국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염희진 국제부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