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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재락]현대차 조합원의 ‘꿈’ 접게 만든 타임오프제 협상

입력 | 2011-08-02 03:00:00


정재락 사회부

강원도가 고향인 현대자동차 직원 이모 씨(49)는 올 여름휴가(7월 30일∼8월 7일)를 고향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칠순을 넘긴 부모가 계시는 낡은 고향 집을 수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씨의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휴가 직전인 지난달 27일 협상 결렬을 선언해 버려 집 수리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름휴가 전에 협상이 타결된 지난해의 경우 이 씨는 휴가 직전 600만∼700만 원, 휴가 이후 성과급과 격려금 1100만 원 등 1700만 원 안팎을 받았지만 올해는 15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 씨의 ‘꿈’을 접게 만든 것은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협상. 타임오프제 적용으로 현대차 노조는 전임자를 현재 230여 명에서 24명으로 줄여야 한다. 노사는 지난달 8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18차례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타임오프제 협상에서 “전임자를 한 명도 줄일 수 없다”는 노조와 “타임오프제는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규정된 강제 법규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회사 주장이 팽팽히 맞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타임오프제에 대해서는 현대차도 같은 그룹인 기아자동차의 선례에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기아차는 노조 전임자 수를 법 규정에 맞게 줄이는 대신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수당을 더 지급하는 방법으로 해법을 찾았다.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더 지급된 수당을 조합비로 징수해 노조 전임자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기아차와 같은 ‘변형된 타임오프제’조차 거부하고 강경책을 고수하는 것은 9월로 예정된 새 집행부 선거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만약 타임오프제를 받아들일 경우 재선을 노리는 현 집행부가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10여 개 현장 조직의 파상 공세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임오프제에 대한 일반 조합원의 생각은 집행부와 딴판이다. 그동안 노조 간부들이 근무시간 중 사이버 도박이나 스크린골프, 심지어 저질 기념품 납품 알선 등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한 조합원은 “조합원의 뜻을 외면하고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노조 간부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게 현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대차 울산1공장 벽면에는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새로운 사고, 새로운 가능성)’라는 문구가 있다. ‘신사고(新思考)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올 초 붙였다고 한다. 새로운 생각은 회사도 필요하지만 노조에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현대차 조합원 이 씨의 ‘고향 집 수리’라는 소박한 꿈도 앞당겨 이뤄지지 않을까.

―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