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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9월초 400호 발간

입력 | 2011-07-28 03:00:00

시대 응시하며 넓힌 ‘詩의 영토’
34년 전통… 신진 작가 쉼 없는 발굴




문학과지성사(대표 홍정선)가 펴내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9월 초 제400호를 맞는다. 1977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시작으로 한 해 평균 11.8권의 시집을 내 34년 만에 시집 400호에 다다른 것. 현재 394호까지 나온 ‘문지시선’은 국내 시집 총서 가운데 최다 호수를 매번 경신하고 있다.

문지시선은 참여지향적인 창작과비평사 시선(333호까지 출간)과 함께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두 축을 이뤄왔다.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현실을 응시하면서도 문학의 본령을 지켜내는 시의 흐름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성복)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등 숱한 스테디셀러를 배출했다.

400호는 ‘시인의 초상’을 그려

문지시선 400호는 301∼399호 시집을 냈던 시인들의 시집 가운데 시 한 편씩을 골라 모아내는 기념시선집으로 꾸민다. 앞선 100호, 200호, 300호도 문지시선에 등장하는 시인의 앤솔러지로 꾸몄다. 이번 400호의 주제는 ‘시로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취지에서 ‘시인의 초상’으로 잡았다. 300호대에 시집을 냈던 시인들이 이 주제에 맞는 자신의 시를 한 편씩 추천해 시집으로 묶을 예정이다. 이 기간 문지시선에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들도 있어 대략 80여 편의 시가 기념시집에 포함된다.

문태준 시인은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빈손이다/하루를 만지작만지작하였다’로 시작하는 시 ‘그맘때에는’을 골랐다 그는 “존재와 소멸을 노래하는 게 시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봉우리 나무 밑에 섰을 때/시야는 탁 트여 파란 하늘에/흩어지는 말을 들으려 쫑긋거리는/돌이 멀리 돛을 펼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시 ‘마이산’을 고른 채호기 시인은 “내 시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시인은 ‘400호’에서 느끼는 각별한 의미를 밝혔다. 시 ‘연못’을 고른 장석남 시인은 “문지시선을 통해 저의 첫 시집이 나왔고, 문지에 실리는 것이 저의 꿈이기도 했다”며 “400호라는 양도 대단하지만 엄밀한 문학적 수준을 견지해왔고 젊은 시인의 실험적인 작품을 꾸준히 다룬 게 더 의미있다”고 돌아봤다. 2006년 첫 시집을 문지에서 낸 하재연 시인은 “문지시선은 우리 시의 첨단(尖端)에 있었고 그들이 쌓여 역사가 됐다. 그 역사 속에 포함될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말했다.

401호는 김혜순 시인의 시집

문지시선 400호대를 여는 첫 시집은 중견 시인인 김혜순 서울예대 교수의 시집(제목 미정)으로 결정됐다. 400호 기념 시집과 함께 출간돼 이 시선집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선정 과정에서 편집부의 고민도 깊었다. 당초 문지시선 1호를 냈던 황동규 시인 등 원로 시인도 거론됐지만 중견 시인의 작품으로 정했다.

홍정선 대표는 “문지시선의 시작을 이끌었던 김현, 김병익 선생님들의 취지가 ‘문지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시작한다’였다. 그 뜻을 이어받아 문지시선은 지속적으로 젊어져야 하고 동시대의 주목받는 작가들을 끊임없이 조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지는 6년 전 300호 출간 당시 시집 디자인과 편집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전통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폰트 등 일부만 수정한 채 400호에 이르렀다. 401호부터도 표지 색깔을 바꾸는 것 외에는 변화를 주지 않기로 했다. 홍 대표는 “시에 있어서의 새로운 기법과 형식적 변화는 수용하겠지만 문지가 지켜 나가야 할 본연의 가치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진화 인턴기자 서울대 가족아동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