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살리기’ 뜻 따로 결과 따로
정부는 공공기관이 소모성 물품을 구매하는 MRO 시장에 지역 영세업체들이 들어오도록 문호를 넓힌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MRO 시스템은 개발도 되지 않은 상태다. 조달청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MRO 시스템은 2009년 정부로부터 경영혁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적기조달, 비용절감 측면에서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며 “공정사회 구현 등 정부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중소기업들이 바로 대기업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향후 공공기관들이 소모성 자재를 구입할 때 대기업 계열 MRO 회사를 배제하는 내용의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달청은 물론이고 계약을 해지한 공공기관들은 구체적인 후속 MRO 계약 입찰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가운데 MRO 시스템을 갖춘 업체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MRO 계열사들은 공공기관들이 필요한 소모성 자재를 주문하면 하청계약을 한 납품업체를 통해 조달하는 자체 MRO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문구류나 산업용 자재 등 필요한 물품을 한곳에서 일괄 구매할 수 있어 비용을 10∼15% 절감할 수 있는 데다 촘촘한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어 적시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다. 인터넷쇼핑몰 같은 형태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자체 MRO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중기청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중소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체 MRO 시스템 개발 예산을 신청했지만 시스템 개발은 빨라야 내년쯤에나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의 기준이 모호한 것도 공공기관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지역 영세 기업들이 공공기관 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로부터 비용절감 압력을 받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납품단가가 높은 영세 기업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 MRO 계열사와의 계약을 중도 해지한 공공기관들은 비싼 납품가격을 감수하고 자재가 필요할 때마다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물품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