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 김정희.
‘유재’ 현판은 예서로 쓴 ‘유재’라는 글자와 행서로 쓴 풀이가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깊은 멋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삶의 자세로 ‘유재’의 의미를 풀어 챙기기보다 남기는 미덕을 강조한 해제가 일품이라 욕망과 물질에 마음이 어두워진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재의 풀이글은 이렇습니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巧以還造化)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財以還百姓)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留不盡之福以還子孫)
다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미덕은 크게 보아 생명세계를 운행하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오직 인간만 다하고도 모자라 아우성이고, 넘쳐도 멈출 줄 모른 채 파국을 자초합니다. 그런 세상에는 아량도 없고 도량도 없습니다. 아량도 없고 도량도 없는 세상에는 도덕도 없고 신뢰도 없습니다. 그런 세상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스러져 사막처럼 황량해집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정 메뉴처럼 재산 증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기업가들은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법적 포장술을 개발합니다.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려는 욕심,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려는 욕심이 세상을 얼룩지게 합니다.
채우고 넘쳐야 직성이 풀리는 세태, 2000여 년 전에 이미 노자는 ‘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되고, 섬세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입은 상하게 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고 경고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비었다. 그런데도 비단옷 두르고 날카로운 칼 차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어 재산은 쓰고도 남으니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랴(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爲盜과)’고 개탄했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