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 겸 과학저널리즘 책임교수
기사는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사회를 위해서도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한다. 좋은 기사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올바른 판단을 도와준다. 그렇지 못한 기사는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국가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사 제작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나는 20년 후에도 깊이 있게 종합 분석 정리된 기사를 읽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뉴스 제작업체들의 채산성(採算性)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사란 좋은 기자에게서 나오고, 좋은 기자는 좋은 처우가 있어야 발굴 육성된다. 그런데 회사 수익이 안 좋아지면서 이런 선순환 고리가 위협받고 있다. 신문 방송이 광고주에 끌려간다는 말도 있다. 기사 판매 수익보다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니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기사 제작산업의 위기는 기술 발전과 사회제도의 불일치에 기인한다. 특히 신문업의 타격이 더 크다. 많은 사람이 종이신문을 보지 않고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기사를 본다. 광고를 봐주는 대신 공짜로 기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사 제작사들은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무료로 기사를 제공한다. 결국 인터넷 포털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 중 극히 일부가 기사 제작자에게 간다. 그러니 소비자가 기사를 제작하는 기자의 월급을 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기사를 유료화(有料化)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그런데 왜 산업의 근본이 흔들릴 정도로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추측은 신문 방송 통신사들이 단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 유료화하면 실패한다는 생각일 수 있다. 두 번째 추측은 신문사들이 마음속으로 치킨게임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치킨게임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해 살아남는 것을 말한다. 경쟁자가 모두 사라지면 유료화하겠다는 전략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치킨게임 전략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위기가 시작된 이후 15년 동안 없어진 신문사는 없다.
거기다가 인터넷에서는 모든 신문사가 ‘평등’하다. 인터넷에는 모든 기사가 평등하게 클릭을 유혹한다. 좋은 기사 좋은 브랜드 차이가 없다. 눈길을 끄는 제목이 이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통하고 있다. 혹은 종합편성 케이블 방송에서 결판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오산이다. 케이블 방송은 더욱 소규모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악순환을 단절해야 한다. 신문 방송 통신사 등 모든 기사 제작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모든 기사에 ‘최저 가격’을 붙여 그 이하로는 거래할 수 없게 하자. 기사당 10원이 될지 50원이 적합할지 원가를 계산해 보면 된다. 어떤 중간 유통 과정을 통하든 클릭을 하면 그 돈은 기사를 제작한 회사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물론 외국에서 기사를 제공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차단하면 된다. 시장경제 방식이 아니라 말할지 모른다. 건전한 노동시장을 위해서 최저 임금제도 있고, 공정거래를 위하여 반덤핑 제도도 있다.
이렇게 하면 인터넷상에서 좋은 기사와 저질 기사에 차이가 생긴다. 좋은 기사를 쓰는 언론사는 클릭이 많아져 수익이 좋아지고, 더욱 좋은 기자를 양성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기사가 우연한 제목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품질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질 높은 기사 제작산업을 가진다는 것은 그 국가의 큰 자산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이럴 때 정부가 나서서 타협을 이끌어내 법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기사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건강한 기사 제작산업을 육성하는 일도 정부의 중요한 일이다. 미국 헌법 초안을 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이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다. ‘상생’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정작 ‘등잔 밑’의 상생이 더욱 절실하다.
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 겸 과학저널리즘 책임교수 khl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