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故人 얼굴 못 보는 애도
우리 한국 문화와 관습으로는 죽은 이의 얼굴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사망하면 친족 이외의 사람은 아예 시신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이내 염을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선시대 옷 같은 삼베 수의로 칭칭 싸서 입관해 놓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친족이라도 염을 한 뒤에 온 사람은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조문객들은 단단히 봉인된 관 또는 관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하면서 애도한다.
광고 로드중
반면에 서양의 장례식 풍습은 우리와 매우 다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서양식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입관한 뒤에 관 뚜껑을 닫지 않고 돌아가신 분의 신체와 얼굴을 생시와 똑같은 형태로 온전하게 드러내놓고 조문을 받는다. 조문객들은 한 줄로 열을 지어 한 사람씩 관에 다가가서 돌아가신 이의 얼굴을 직접 보면서 조의를 표한다. 서양의 장례문화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유달리 좋아했던 품성을 꼬집는 유머도 생겼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언제 어디를 가든지 자신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혼식에 가면 신랑이 되고 싶어 했고, 장례식에 가면 시신이 되고 싶어 했다.”
고인의 사진을 향해서 애도하는 것과 고인 본인을 향해서 애도하는 것, 둘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애도가 될까.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는 우리와 서양식 장례문화의 본질적인 차이로 쳐서 충분히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式 壽衣 문화는 개선해야
광고 로드중
조선시대에는 수의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입는 옷과 같은 모습이었고 같은 재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도 조선시대의 오래된 무덤이 발굴될 때 복식 전문가들이 막중한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수의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인가. 옛날에는 고인이 수의를 입고 저승으로 가서 그 옷을 입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서 비싸고 좋은 수의를 마련해서 입혀 드리느라고 애썼다.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싸고 좋은 수의를 마련하는 전통은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최상급 안동포처럼 좋은 베로 만든 수의는 부르는 게 값이다. 수의 한 벌에 1000만 원짜리도 있고, 몇백만 원짜리는 흔하다. 어느 측면에서 보든지 간에 별 의미가 없는 명실상부한 과소비로 이젠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된다.
고인이 저승에서 그 수의를 입고 지낼 것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과도하게 비싼 조선시대 양식의 삼베 수의를 마련해서 시신에게 입히는 일은 무의미하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면 더욱이나 거창한 조선시대식 수의는 무의미하다. 고인이 생시에는 전혀 입었던 적이 없고 치수도 매우 큰 삼베옷을 저승에서 입고 지내라고 강요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 고 문익환 목사의 집안에서는 상사가 날 때마다 고인이 입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세탁소에 보내 깨끗이 세탁해서 수의로 썼다. 그래서 생시에 입던 옷과 죽어서 입는 옷이 일치했다. 그것이 대대로 지켜지고 있는 그 집안의 가풍이다. 수의 문제를 고찰할 때 검토할 가치가 있는 사례에 해당한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