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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경진]한국뇌연구원 설립 하루가 급한데…

입력 | 2011-06-01 03:00:00


김경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뇌기능 연구 프론티어 사업단장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가 우여곡절 끝에 선정됐다. 우리나라 과학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으로 평가되는 과학계 숙원사업이 마침내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뇌과학 분야 연구자 시각에서는 지난 2년여 동안 국가 차원의 ‘뇌연구 기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뇌연구원 설립이 추진돼 왔음에도 여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해 안타깝다. 2009년 말 입지 선정을 마치고 2012년 하반기에 건물을 준공해 2013년 초 개원을 목표로 하는 정부 로드맵의 설립 추진 일정이 상당히 미뤄졌다.

조만간 뇌연구원 입지가 최종 선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처럼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뇌연구원 설립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뇌연구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2008년부터 추진돼 왔다.

현대과학이 ‘작은 우주’로 불리는 뇌의 비밀을 풀고 이해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블랙박스로 여겨지는 뇌기능에 대한 많은 부분은 여전히 신비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뇌과학이 21세기 첨단과학의 최전선이자 인류 최후의 프런티어 영역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학습과 기억, 뇌 인지 기능, 신경세포의 손상 소멸 메커니즘, 치매 우울증 뇌중풍(뇌졸중) 파킨슨병 등 각종 뇌질환의 병인 규명과 치료, 뇌와 기계의 접속, 나아가 인공지능과 로봇 등에 이르기까지 뇌에 대한 연구와 그 융합, 응용 분야는 실로 다양하다.

뇌연구는 국가 차원의 집중적인 R&D 투자가 이뤄질 경우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미래 원천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어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게다가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등 첨단과학 분야 융합연구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초, 원천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분야 국격(國格) 상승에도 기여하게 된다.

선진 각국은 20세기 말부터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각각 ‘뇌 연구 10년’ 프로젝트와 ‘유럽 뇌연구 10년’ 법안 제정 등을 통해 뇌과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도 20년간 뇌연구에만 매년 1조5000억 원이 넘는 연구비를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1998년 ‘뇌연구 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뇌과학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정부의 21세기 프런티어 R&D 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 출범해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 기술개발 연구사업단’의 경우 뇌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유용 유전자를 다수 발굴해 뇌기능을 밝히고, 신약 후보물질의 기능을 점검하고, 뇌연구 핵심 기반기술인 ‘뉴로 툴’을 개발하는 등 국내 뇌과학 연구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뇌연구에 대한 R&D 투자 대비 연구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뇌연구 같은 융합과학의 특성상 단기에 성과를 창출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실패 위험 또한 높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뇌연구원은 설립에 그쳐서는 안 되고 세계적 수준의 내실 있는 운영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국내 뇌연구 능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키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금까지보다 10배 이상 더 많은 R&D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인류 최후의 도전이자 21세기의 블루오션인 뇌연구의 경쟁 대열에서 선두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뇌기능 연구 프론티어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