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논설위원
여권이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다음 해 4월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이겨야 했다. 하지만 김종필 씨가 자민련을 창당하며 떨어져 나간 충청권과 전(前) 정권의 기반인 대구·경북권의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타깃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맞춰졌다. 서울 인천 경기를 합친 수도권 의석은 96석으로 전체 지역구(253석)의 38%를 차지했다. 당시 수도권은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승부의 열쇠는 ‘사람’이었다. 각 분야의 ‘베스트’를 공천함으로써 국민에게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전략이었다. 인재 발굴은 YS의 차남 현철 씨가 이끈 비선(秘線)팀이 주도했다. 당시 공천 작업에 관여한 한 인사는 “‘존안카드’만으로 새 인물을 찾아내기 어려웠다”며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발굴하고 여러 차례 정교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본선 경쟁력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YS가 재임 중 안보정책 조정권을 놓고 결별한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다시 끌어안은 것은 인재영입 작전의 ‘백미(白眉)’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이 전 총리의 ‘대쪽 총리’ 이미지는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었다. ‘나 홀로’ 길을 걸었던 박찬종 전 의원까지 합류해 선거대책위원회 수뇌부가 구성됐다.
개혁공천의 힘은 총선 현장에서 위력적이었다. 특히 서울에서 야당인 국민회의 중진들이 다진 아성은 신한국당의 정치 신인들에게 속속 무너졌다. 서울 47개 선거구에서 신한국당이 과반인 27석을 차지했다. 당시 집권세력이 서울에서 야당을 제치고 1당으로 올라선 것은 처음이었다. 승인(勝因)은 신한국당이 새 인물 공천으로 변화의 주도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의 전체 의석은 과반에 못 미치는 139석이었지만 집권 후반기를 끌어갈 동력은 확보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 신한국당을 이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6·2지방선거에 이어 지난달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일부 조사에서 당 지지율은 민주당에 역전당했다.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만 활로(活路)는 보이지 않는다. 공천개혁으로 포장된 상향식 공천제도는 정작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용도로 변질되는 듯하다.
변화의 키워드는 사람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라면 과감한 물갈이를 불사하더라도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수혈(輸血)하는 게 급선무다. 7월 전당대회를 거쳐 새 지도부가 들어선다 해도 꼬여 있는 당내 세력 판도 속에서 제대로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답은 이미 15년 전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