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문화부장
기자는 2002년 ‘바이올린계의 여제(女帝)’ 정경화 씨를 단독 인터뷰했던 때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녀들을 키우셨기에 셋이나 되는 연주계 대가를 길러내셨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묻자 정 씨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 어머니가 ‘유니크’한 점이 있어요. 생일이다 입학이다 격식대로 때맞춰 챙겨주는 것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딱 집중해서 ‘셋업’해 주는 그런 분이었거든요. 대담하고, 한번 결정하면 무서울 정도예요.”
어떤 점이 자녀조차 ‘무섭다’고 하는 어머니의 추진력을 낳았을까. 특유의 의지와 집중력도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문화정책 담당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보를 캐고 최선의 길을 탐색했던 그의 ‘정보력’이야말로 한번 결정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의 근원이었음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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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무대의 주역 중 하나가 된 한국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자녀의 성공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길이 대개 같은 방향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의사나 법관, 국내외 명문교 졸업…. 그렇게 한결같아야만 할까. 국력 자체가 3등국이던 시절에 ‘감히’ 연주가로 해외유학을 꿈꿀 정도의 조건과 정보력을 갖추었던 고 이 여사를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어디에 남다른 재능을 갖추었는지를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좌표를 설정해 밀어붙인 그의 혜안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공 스토리 중 하나를 만들었다. 최소한 그런 정신과 시도가 더욱 많이 출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기자도 음악기자 초년 시절 신문사로 직접 찾아온 고인을 몇 차례 뵈었다. “어떻게 직접 오십니까” 하면 “재주 있는 젊은 애들 일이라서…”라고 했다. 그가 들고 온 전단은 10대 유망 음악가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것이었다. 대예술가들을 키워낸 그의 모정은 만년에는 가족을 넘어선, 더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