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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받는 ‘1조 맨’ 차용규 씨, 영웅인가 탈세범인가

입력 | 2011-05-19 03:00:00

종적 감춰 실종설 나돌더니… 수천억대 국내 부동산 소유




동아일보DB

평범한 직장인에서 카자흐스탄의 구리 채광업체 인수를 통해 1조 원의 자산을 모아 화제가 됐던 차용규 씨(사진)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차 씨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차 씨는 경기고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했다. 성공가도의 시작은 1995년 그가 삼성물산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사 과장에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지점장으로 옮기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의 업무는 카자흐스탄의 국영기업으로 파산 위기에 놓였던 구리 채광 및 제련업체 ‘카자흐미스’의 위탁관리였다. 차 씨는 그곳에서 2년 만에 카자흐미스를 흑자회사로 돌려놓는 수완을 발휘했고, 현지 근무 3년 만인 1998년 부장으로, 2000년엔 카자흐미스의 공동대표에까지 오르며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는 보유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겼고, 삼성물산도 지분 전체를 2001년과 2004년 2차례에 나눠 매각했다. 이때 차 씨는 현지 고려인인 블라디미르 김 씨 등과 함께 2차 매각 지분 일부를 사들였다. 그는 2005년 회사를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고, 이후 국제 구리시장 호황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까지 치솟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듬해인 2006년 말과 2007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카자흐미스 대표이사직을 물러났다. 이때부터 그는 ‘1조 원의 사나이’로 불리며 ‘샐러리맨의 영웅’이 됐다.

1조 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쥔 차 씨의 행적은 국내 재계와 언론의 큰 관심사였다. 주식 매각대금을 국내에 투자한다면 재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적을 감췄고, 실종설, 마피아 납치설 등과 함께 런던과 홍콩 등지를 오가며 살고 있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그러던 차 씨가 2008년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인수한 서울 강북지역의 한 백화점의 경영 문제를 놓고 분양자들과 협상하는 자리에서다. 이후 차 씨가 백화점을 인수하기 위해 당시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사무실을 둔 월드와이드컨설팅(이하 월드와이드)을 이용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또 차 씨가 월드와이드를 통해 서울 강남, 경기 안산, 제주 등지에서 호텔, 빌딩, 상가 등 당시 시가로 3000억 원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확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차 씨의 자산은 크게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월드와이드의 한 관계자는 “한국 10대 부동산 기업에 우리 회사가 들어간다”고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17일 오후 대전 중구 오류동에 있는 월드와이드 본사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 직원은 “가끔 차 회장이 사무실에 나타나곤 한다”고 전했다. 차 씨는 최근에는 라부안에 주소지를 둔 투자회사인 J사를 앞세워 국내 기업들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국세청 조사는 차 씨의 해외 탈세 혐의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국내 부동산투자 관련 탈세가 있었는지에 집중될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차 씨가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느냐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차 씨는 국세청의 추징이 이뤄질 경우 ‘비거주자’(세법상 외국인)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머물 곳을 둔 개인이다. 실제로 차 씨 측 관계자들은 “국내에는 1년에 채 한 달도 머무르지 않는다”며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수천억 원 규모의 세금 추징을 놓고 치열한 법정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이건혁 기자 realist@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