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 “물가 뛰는데 집값은 하락… 난생처음 투표장에”
전통적으로 보수 중산층이 모여 살고 있다는 분당을 4·27 보선에서 손학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이후 정치권과 이명박 정부가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산층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선거 2주 후 취재에 응한 분당의 중산층들은 살림살이가 쪼그라드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나는 이제 중산층이 아니다”라며 박탈감을 토로했다. 문제는 중산층의 위기감이 분당 한 지역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 상대적인 박탈감에 곤혹스러운 중산층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라는데 나의 삶은 뭐냐는 의문 때문에 중산층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에 예산 지원을 늘려 하위층의 소득은 다소 개선됐지만 중산층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실제 분당에서 동아일보 취재팀이 인터뷰를 한 분당시민 10명은 소득수준이나 교육 등 조건을 볼 때 중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중 3명은 “나는 중산층이 아니다”고 답할 정도로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분당에서 만난 회사원 이준태 씨는 “예전에는 부동산자산이 부채보다 높게 평가돼 자신을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대출이자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는데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그렇다고 팔지도 못하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이 늘면서 중산층 심리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 무너지는 사회 안전판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상가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한 남모 씨(43)는 식구가 4명인 전형적인 중산층 가장이었다. 월 소득도 한때 600만∼7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남부럽지 않았지만, 인근에 대형 고급 식당이 속속 들어서는 등 경쟁이 격화되면서 결국 가게를 접고 말았다.
중산층은 통상 가구 월평균 소득의 50∼150%인 계층으로 분류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월평균 가구소득이 363만2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181만(50%)∼544만 원(150%)에 들어가는 가구는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2003∼2009년 중산층 가구의 비중을 분석한 결과, 2003년 60.4%를 차지했던 중산층 가구 비중이 2009년 55.5%로 6년간 4.9%포인트 감소했다. 이 기간 중산층 소득 증가율도 평균소득 증가율(7.4%)의 절반에 못 미치는 3.2%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남 씨와 같은 자영업자의 몰락과 급속한 고령화가 중산층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베이비 부머들이 제대로 노후 대책을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하면서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구가 많은 것도 문제다.
중산층의 존재는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민심 읽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치권과 이명박 정부의 운명을 가름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와도 직결되어 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최근 한국 정치권은 이념 경쟁이 격화되면서 누구도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중산층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으니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며,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정치적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성남=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팍팍한 삶, 왜? ▼
성장 온기는 위에서 천천히 내려가고 물가 고통은 밑에서 빠르게 퍼져나가
실제로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3.4%에 그쳤다. 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1.1%를 약간 넘어선 것이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소득 증가 속도가 뒤처지고 있다. 반면 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로 2005∼2007년 연평균 2.5%보다 1%포인트나 높아졌다. 결국 지난 3년간 임금 근로자의 소득증가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소득은 매년 감소한 셈이다. 예를 들어 매달 벌어들이는 임금은 300만 원, 지출은 200만 원인 가구의 경우 3년 동안 임금은 10만 원가량 올랐지만 물가 상승으로 지출은 약 22만 원이나 늘어났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