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흡 사회부 차장
몇 년 전 비(非)고시 출신인 한 경제부처 공무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김 수석이 테러로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경제부총리가 됐을 것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김 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힘을 실어줘 경제부총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는 것.
그러나 당시 고시 출신 경제 관료 사이에서는 김 수석을 견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행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관계(官界)에 투신한 김 수석이 자신들이 가야 할 자리를 빼앗았다는 정서가 있었다는 얘기다. 고시 합격자 연락처를 담은 수첩에 ‘고시동지회’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철옹성을 쌓고 있는 고시 출신 관료들로서는 ‘잘나가는’ 김 수석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는 게 이 공무원의 분석이다. 그는 “김 수석이 계속 잘나갔으면 고시 출신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험한 꼴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진 곳. 각종 경제정책을 조율하기 때문에 ‘선임 정부부처’로 통한다. 고시 출신 재정부 관료들이 평소 “한국경제는 우리가 책임진다”며 콧대를 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각 이후 일부 고시 출신 재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분위기는 ‘국가경제 발전’보다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개각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고시 출신 전성시대’로 본다. 개각 대상 5개 부처 장관 중 4명(박 내정자 포함)이 고시 출신이기 때문. 청와대가 여당의 재·보선 패배 등으로 ‘쓰고 싶은’ 인사보다는 ‘탈 없는’ 인사를 선택한 결과다. 물론 재정부 관료들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자체 장관 자리를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예전처럼 다른 부처 장관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로 접어든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도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부 관료들에게 “오버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고마 해라. (그동안)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대사와 함께.
송진흡 사회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