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20돌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서 활약 김길 시인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는 장애인 문학 계간지 ‘솟대문학’.
○ 20년을 돌아온 시인의 꿈
‘순간순간마다 사람들은 풀꽃처럼/흔들립니다./발자국에 묻어나는 쓸쓸함에도/덧없이 흔들립니다.’
하얀 도화지에 큰 글자로 시를 쓰는 김길 시인이 보는 세상은 늘 눈부시게 하얗다. 시인의 서재엔 음성 녹음 도서들이 진열돼 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흔들리는 풀꽃처럼 시인의 삶은 흔들렸다. 고교시절 백석의 시집을 들고 다니며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을 가린 하얀 안개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 망막색소변성증,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이 눈 속 까만 종이에 맺히지 않았다. 소년은 손때가 묻어 너덜해진 백석의 시집을 더는 넘기지 않았다.
‘강은 무수한 소리의 흔들림/…/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돌들도/있어야 할 곳을 찾아 제 몸 뒤척이듯.’
그런 그에게 다시 시가 찾아왔다. 눈 대신 귀로 시를 읽었다. 복지관에서 녹음한 음성도서로 시를 읽고 문학을 공부했다. 복지관 문학창작교실 강의를 맡은 국문학 교수들도 그의 열정에 감동했다. 4년을 배우며 끊임없이 시를 썼다.
솟대문학이 2003년 가을호부터 그의 시를 싣기 시작했다. 하얀 도화지에 큰 매직으로 쓴 시는 실로암문학상, 안문희문학상, 청민문학상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다.
○ “솟대문학은 세상 향한 문”
창간 당시부터 편집자 겸 발행인인 방 씨도 1급 지체장애인이다. 휠체어를 탄 그는 동국대를 수석 졸업했고 KBS 제3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 하늘’의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 씨도 20여 년을 돌아 왔다. “문이란 어쩌면 돌아오기 위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솟대문학은 제가 시의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문이었습니다.”
‘지우고 비워야 가벼워지는 세상에서/지극히 작은 돌 같은 나로 인하여/흔들릴 세상을 바라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오늘도 가슴에 쓴 시구를 읽는다. 풀꽃처럼 흔들렸던 시인은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시인도, 솟대문학도 이제는 ‘나로 인해 흔들릴 세상’을 꿈꾼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