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유산 기부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혼자만의 결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의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다. 자칫 가족 간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이 지난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산을 기부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은 36.7%로 2007년(28.8%)에 비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65.5%가 ‘유산 기부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가족의 동의를 얻기 어려움’(35.2%), ‘유산 기부 관리기관에 대한 신뢰 부족’(26.4%) 등을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로 꼽았다. 유산 기부를 가로막는 세 가지 잘못된 상식에 대해 짚어본다.
○ 손으로 쓴 편지로 기부가 가능하다?
2003년 자녀가 없는 김운초 전 한국사회개발연구원장이 사망하자 유족인 친동생 등은 고인의 거래은행에 예금 출금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인의 대여금고에서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이 발견됐다. 유가족은 출금 요청을 거부당했고 예금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고인의 유언장에 날인이 없어 민법이 정한 자필유언장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유가족이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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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가족재산이야기’의 저자인 고득성 SC제일은행 삼성 PB센터 이사는 “유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산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미리 유언을 준비해 가족 간 오해와 다툼을 막는 것이 가족을 위한 재테크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 가족 동의 없는 기부 문제없다?
가족과의 불화로 재산 전액을 기부단체에 유산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족의 합의나 동의 없이 전액을 기부하기보다 법정상속권자의 유류분을 고려해 적절한 재산 분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류분 제도는 민법상 상속분의 일정액을 보장해주는 상속인 권리 중 하나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고인이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 재산을 단체에 기부한다면 유가족이 기부단체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 소송을 걸 수 있다. 따라서 유산 기부를 계획할 때는 상속인의 유류분을 고려해 전액 기부보다 상속분과 사회에 환원하는 비율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이 좋다. 아름다운재단 서경원 사무국장은 “평소 유산에 대한 본인의 뜻을 가족에게 알리고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유산 기부의 중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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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현금이나 부동산을 유산 기부 형태로 선호했다. 이 밖에 물품이나 금융자산이 뒤를 이었다. 이런 까닭에 충분한 현금이나 부동산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유산 기부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기부할 유산이 현금과 부동산만 있는 건 아니다. 보험금의 수익자를 기부단체로 지정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 보험금 전액을 기부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수익자를 복수로 지정해 일부만 기부단체에 지급되도록 지정할 수 있다.
최근에는 생전 및 사후에 신탁재산의 수익권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자를 지정해 유언장이 없더라도 자산을 종합 관리할 수 있는 신탁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