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단 한 권의 책 - 코디 런딘 지음·정지현 옮김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 제임스 - 웨슬리 롤스 지음·노승영 옮김
동일본 대지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 당장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체면이나 생활습관 따위는 생각할 여지가 없다. 미국 ‘야생생존훈련학교’의 창립자이자 생존학 전문가인 코디 런딘은 “대부분의 해충과 벌레, 곤충은 훌륭한 저녁식사가 된다. 생쥐도 주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 사냥법과 요리법까지 자세하게 곁들인다. 그의 신간 ‘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단 한 권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저자가 직접 실험해 본 내용을 썼다. 재난 직후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는 지금도 전기 없는 집을 짓고 살면서 빗물을 받고 쓰레기를 퇴비로 쓰며 쥐를 잡는다.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했으니 그 다음은 ‘생물학적 필수품’, 물 차례다. 재난으로 상수 시설이 파괴됐을 때 오염수를 그냥 마시면 살모넬라균과 콜레라균에 전염돼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저자는 이때 ‘변기 뒤 뚜껑을 열라’고 충고한다. 변기 뒷부분에 차 있는 물은 식수로 쓸 수 있다. 변기의 물이 다 떨어졌다면 물침대를 찢는다. 물침대 속의 물마저 다 써버렸다면 상처 났을 때 소독에 쓰는 약으로 안전한 식수를 만들 수 있다. 가정에서 많이 쓰는 상처 소독약은 ‘10% 포비돈 요오드 용액’이다. 진흙이나 플랑크톤 같은 입자성 물질로 탁하게 오염돼 있는 물 1L 정도에 이 용액 여덟 방울을 떨어뜨린 후 30분 정도 기다린다. 요오드는 탁한 물 속에 존재하는 질소화합물과 유기물, 무기물과 쉽게 합쳐져 물을 맑게 한다. 물에서 요오드의 맛이 느껴진다면 소독이 잘된 것이니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재난 직후 스트레스와 공포는 공포의 대상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스트레스란 단어를 처음 지어낸 캐나다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도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이 인간에게 해롭다”고 말했다. 인간은 혼란 상태를 의식하고 이해하기까지 극한의 공황, 불신 등 정상과 다른 변화를 보인다. 멍한 상태로 상처받은 채 걸어 다니는 사람들, 수면장애, 무감정, 죄책감, 무기력감 등을 겪는 이들은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이다. 재난으로 인한 목숨의 위협이나 손상된 시체 목격 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이다.
저자는 “아무리 기술과 물품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어도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재난이…’는 어떤 끔찍한 상황이 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시체에 오염된 물건은 0.1%의 염소 표백제를 1:50의 비율로 물과 희석하여 소독한다’처럼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이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은신처를 만들라’이다. 은신처는 평지보다 산악지대가 낫다. 이유는 침입자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가축 기르기, 자기방어, 긴급대피 등의 요령이 실렸다. 하지만 ‘크리스털퀘스트사의 자외선 소독기가 좋다’는 등 ‘세상의 종말’ 때는 결코 구할 수 없는 특정 상표의 장비를 미리 사놓으라는 식의 서술은 실용성이 떨어져 아쉬움을 준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