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되든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든 한국 좌파의 ‘양심적 지성’ 역할 기대”
박효종 교수
사실 신인상이라면, 특히 가수가 받은 신인상과 비교할 수 있다. 조 교수를 가수로 친다면 무슨 노래를 불러 ‘신인 가수상’을 받은 것일까. 아마도 ‘강남 좌파’라는 노래가 아닐까.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음이 고르지 못해서 그런지, 박자가 맞지 않아서 그런지 그 노래를 즐겨 듣는 청중이 많이 없었다. 혹은 “우∼” 같은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그 비아냥은 좌파에게서도 우파에게서도 나왔다. 그러나 조 교수가 강남 좌파라는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청중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고 앙코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상이 성취보다 미래를 약속하는 상이라면 앞으로 숱한 풍랑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어떤 도전일까. 좌우 양쪽에서 제기될 만한 도전이다. 좌 쪽에서는 어떤 물음을 제기할까. 아무리 복지를 얘기하고 분배를 얘기해도 결국은 출신성분은 기층 민중과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에 대해 “출신성분은 부르주아지만 그 계급에 반하는 생각과 말을 일관되게 할 수 있다”라고 할 것인가. 또 보수로부터는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분배를 외치면서 좋은 곳에 사는 등 공과 사가 다른 걸 어떻게 해명할 수 있나.” 여기에 대해 “이념적 가치와 실존적 삶은 다른 것이다”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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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문 연구와 사회 참여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일보DB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가 있으나 그 관계는 순탄치 않다. 좌파든 우파든 권력의지에만 매몰되고 권력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에만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서로를 헐뜯을 수밖에 없다. 제로섬 게임이 되니 오직 위너가 아니면 루저가 될 뿐이다. 그러니 죽자 살자 싸우는 것이다.
사실 진보와 보수 관계가 지금처럼 살벌하고 적대적으로 된 것도 권력의지를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지에 목을 매게 되면 선의의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좌파나 우파는 집권문제 말고도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손자병법을 보면 승리는 변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공동체에서 경쟁하는 진보와 보수가 변칙으로 승리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정론과 정도로, 거짓이 아닌 진실로 승리하려고 해야 한다.
지금 조 교수는 신인이지만 상종가를 치고 있는 것 같다. 좌파 정치권에서 그를 ‘콜’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는 조 교수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 정치인이 되든, 혹은 대학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든, 어떤 것도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인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왕 강남 좌파라는 새로운 비전을 내걸었으면 작게 지저귀지 말고 크게 지저귀는 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다는 여러 개의 강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조 교수가 우리 공동체라는 바다를 놓고 보았을 때 여러 개의 강물 가운데 큰 한 줄기의 강물이 됐으면 한다. 그가 정치인이 되든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아 있든 한국 좌파의 지성으로서 또 양심적 지성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크게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는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