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절제 보여준 民… 리더십 잃은 官… ‘순종하는 사회’ 日에 변화 바람 불 수도
존 페리
일본인들은 자제력과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자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악의 재난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려는 절제된 행동은 인상적이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발휘되고 있는 일본의 금욕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비틀거리는 모습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운영과 안전장치 마련에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에도 정보를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역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일본은 20세기에 두 차례의 대지진 사태를 겪었다. 첫 번째는 1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와 함께 도쿄와 요코하마(橫濱)를 폐허로 만들었던 1923년의 간토(關東) 대지진이었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서 발생했던 당시 지진 사태에서 일본 국민들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은 희생양을 찾았고 조선인을 포함한 일부 소수민족을 방화범으로 몰아갔다는 기록도 있다. 대지진은 일본 경제를 흔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일본은 지진에 대비한 건축기술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도시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역시 인구가 밀집한 산업지역에서 발생했고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인 고베(神戶)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자연스럽게 세계 10대 물류항구였던 고베는 그 지위를 한국의 부산에 넘겨줬다.
국제경제 특성상 일본이 겪고 있는 3중 재난은 국제경제의 공급과 물류에서 일시적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일본 산업계는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진과 쓰나미 사태는 경제의 중심지역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복구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고 정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복구비용이 아니라 자신감의 회복이다. 일본이 이번 초유의 대재난 사태를 맞아 보여준 용기와 강인한 회복력, 그리고 도덕적인 승리는 일본의 혼을 다시 점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회의감은 ‘순종의 사회’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존 페리
■ 존 페리
예일대 석사(중국학) 하버드대 박사(사학)
저서: ‘독수리 날개의 아래에서: 점령국 일본의 미국인’(1984년)‘서양에 맞서다: 미국인과 태평양 개방’(1995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