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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기밀 빼낸 판사출신 변호사’ 영장 기각

입력 | 2011-04-08 03:00:00

법원 “증거인멸 우려없다”… 일각 “제 식구 감싸기”




법원 직원을 통해 구속영장에 첨부된 고위공무원의 비리첩보를 빼내고 사건 수임료 소득을 감춰 9000여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 A 씨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본보 7일자 A1면 참조
A1면 영장기밀 빼낸 판사출신 변호사 영장

광주지법 순천지원 김보현 영장전담판사는 7일 공무상기밀누설 교사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A 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판사는 이날 오후 2시 A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와 기록 검토를 마친 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A 씨 사건을 수사해온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일부에서는 법원이 판사 출신인 A 씨의 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왔으나 일부에서는 법원과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보강수사를 거친 뒤 A 씨를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날 오후 2시경 순천지원 210호 법정에서 열린 A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A 씨의 동료 변호사가 간략하게 변론을 한 뒤 10분 만에 끝났다.

한편 A 씨는 6년간 판사로 일하다 2006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A 씨는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최근 순천시내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닫고 변호사 업무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 택시에 떨어뜨린 ‘영장기록’이 수사 단초 ▼
양복에 넣은채로 두고 내려… 기사 신고로 불법복사 들통

“벼락에 맞을 확률에 걸렸다.”

전남 순천지역의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A 씨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을 두고 이런 말이 나돌고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A 씨가 법원 직원을 통해 수사기밀을 빼낸 혐의를 포착하게 된 과정이 너무나 우연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순천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경 A 씨는 고교 동문 모임에 참석해 2차로 동문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술을 많이 마신 A 씨는 깜빡 잊고 양복 웃옷을 노래방에 두고 귀가했고 자리가 파하면서 이를 발견한 동문 친구 1명은 나중에 A 씨에게 갖다 주기 위해 옷을 챙겼다. 그러나 노래방을 나와 택시를 탄 A 씨의 동문 친구는 택시에서 내리면서 깜빡 잊고 이 옷을 두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 운전사는 좌석에 놓여 있는 양복 웃옷을 발견하고 옷 주인을 알아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다 이상한 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문서에는 ‘지방교육 자치단체 고위공무원이 지역기업 P사 대표로부터 선거자금으로 수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검찰의 P사 횡령사건 수사에서 P사 직원 1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첨부한 수사첩보보고서였다. P사 횡령사건을 수임했던 A 씨가 법원 직원에게 부탁해 입수한 복사본을 웃옷에 넣고 다니다 택시 운전사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

문서 내용에 깜짝 놀란 택시 운전사는 이를 곧바로 검찰청에 가져다 줬고, 검찰은 이를 역추적해 A 씨가 영장 기록을 빼낸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