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구도의 수단··· 마음으로 찍어야 좋은 작품 나와”
‘스님 봄이 왔습니다.’ 선방 앞의 만개한 앵두꽃이 수행 중인 스님을 향해 호들갑스럽게 봄을 알린다. 범어사,1995년. 석공 스님 촬영
―스님이 사진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85년쯤인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저희 사찰에서 사진을 찍다가 저보고 모델이 돼 달라는 거예요. 마지못해 그분들의 청을 들어드렸는데 모델을 하면서 그분들이 진지하게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선 ‘저게 뭐기에…’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지요.”
―가장 먼저 시작한 사진작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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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자신의 수상경력을 꼬치꼬치 묻는 기자에게 상(相·나를 내세우는 것) 없이 살아야 하는데 너무 상을 다루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한다.
―공모전 입상은 쉬웠나요.
―마음으로 찍는다 하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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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달력도 만드셨죠.
“어느 해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를 찾아서’와 ‘만행’을 주제로 한 사진으로 두 번 정도 달력으로 만든 적이 있어요. 다른 사찰용 달력을 만드는 데도 가끔 일조를 합니다.”
―그렇게 사진이 불가에 보탬이 되면 뿌듯하시겠습니다.
“웬걸요. 오히려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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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승려에게 누드란 별다른 의미가 없어요. 개인적으로 찍어 본 적은 없고 사진의 한 분야라고 하니 동호인들과 단체 출사를 나가 몇 번 찍었어요. 한데 승려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일반인들이 신기한 시선으로 볼 때는 좀 부담스럽기는 합디다. 언젠가 누드 사진을 찍는 중에 모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델이 씩 웃어 주더군요. 부담 갖지 말고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 모델에게 고마웠고 저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호계합장, 범어사 행당, 1998년.
스님과 세속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교와 사진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가 궁금해 화제를 살짝 돌렸다.
―사진은 구도의 길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좋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것은 참선의 화두와 같습니다. 사진은 내가 카메라를 작동한 그대로를 나에게 보여줍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많은 중생이 제 사진을 보고 진정 공감한다면 제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니 그분들도 저와 같은 구도의 길에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진을 하면 사람의 천성이 바뀐다고 주장하십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얼굴 전체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눈, 코, 귀, 입 등을 조목조목 자세히 뜯어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디가 잘생겼다 하면 인물사진을 찍을 때 그 잘생긴 부분을 포인트로 해서 사진을 찍게 됩니다. 사진은 좋지 않은 것보다 좋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니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또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니 인내도 키우게 됩니다. 결국 좋은 것 때문에 나쁜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어요, 그러다보면 천성이 좋게 바뀌는 것이죠.”
―사진의 소재나 주제가 사찰 주변에 한정되는 느낌입니다.
“꼭 그렇진 않아요. 늘 절에 머물며 이곳의 일상을 기록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함께하는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풍경사진을 찍기 위해 온 세상을 쏘다니기도 합니다. 이른 새벽에 나가 지리산 일출을 찍고 절에 돌아와도 아직 오전이니 ‘세상이 많이 편해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스님과 일반인이 사진을 찍으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마디로 일반인이 한 쌍의 새를 찍는다면 저는 한 마리의 새를 찍습니다. 제 삶 자체가 그러니까. 그리고 제 머리 속 불교적 지식들로 인해 똑같은 사물을 봐도 불교적으로 생각하며 피사체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장의 연꽃 사진을 보여주며) 제가 이렇게 많이 피어 있는 연꽃들을 찍으면서 유독 맨 앞에 하나의 연꽃을 두고 나머지는 뒤에 조그맣게 찍은 까닭은 맨 앞의 연꽃은 부처님이고 뒤의 연꽃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대중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일반인이 동적인 사진에 치중한다면 저는 정적인 사진에 더 몰두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꼬불꼬불한 산길이 있다면 보통은 그 산길에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찍어 사진에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하지만 저는 호젓한 산길 그 자체를 찍는 편이며 ‘이 길은 앞으로 누가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진을 즐깁니다. 가만히 있는 풀 한 포기, 조그만 꽃 한 송이 모두 다 소중한 존재잖아요. 그래선지 제 사진은 가라앉은 느낌이 나지요.”
―사진의 제목도 불교식 냄새가 많이 풍깁니다.
“사진 제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적절한 제목이 생각 나지 않을 때는 불교경전을 뒤져서 좋은 글귀를 찾아냅니다.(나뭇가지 많은 반송·盤松 사진을 보여주며) 눈 내리는 날의 소나무를 찍은 사진인데 제목이 천수천안(千手千眼)입니다. 수많은 가지가 제 눈에는 관세음보살님의 천수이고 무수히 내려 쌓이는 눈이 사람의 눈과 발음이 같으니 천안이지요. 그래서 천수천안입니다. 하하하.”
―범어사 어디가 좋아서 40년 동안 계셨습니까.
“제가 19세에 출가해 올해 환갑이 되었으니 참 오래 있었네요. 저랑 같이 들어온 도반들은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데 저는 사진 때문에 떠돌아다닐 수가 없었어요.”
―사진 때문이라면 떠돌아다닐수록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세상 풍경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매일 보는 범어사 풍경이지만 시간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 풍경은 달라집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수목이 더 자라고 사찰도 모양이 바뀌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찍어도 늘 변화함을 알게 돼요. 올해는 드물게 이 지역에 눈이 많이 오기도 했고요. 저는 그런 것을 지켜보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범어사 경내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또 다른 이유를 대라면 제가 밖에 나가 수행할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이겠죠.”
―범어사는 사진과 인연이 깊은 도량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 돌아가신 관조 스님도 사진을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교류하면서 사진을 배웠지만 관조 스님께선 사진을 독학으로 하신 분입니다. 저도 그 스님을 자주 따라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진 않으셨지만 제가 사진을 잘 못 찍으면 꾸중을 많이 하셨어요. 올해가 벌써 돌아가신 지 4주기가 되는 해네요. 지금은 부산지역에만도 도선사 법회 스님, 석불사 달원 스님이 사진을 하십니다.”
―앞으로 사진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남은 생애 중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회향(回向)하는 심정으로 딱 한 번 개인전을 하고 싶어요. 새로 뽑는 사진도 있겠지만 오래돼서 퇴색한 듯한 사진은 옛 빛깔 그대로 걸고 싶어요. 이생에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덕을 베푸는 의미도 있고 가기 전에 한 번의 정리는 필요할 테니까요.”
석공 스님은 4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날 만개할 예정인 선암사 매화를 찍으러 가기 위해서다. 매화가 피었다고 해서 한 차례 다른 곳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것을 보고 알려준 사람을 원망하기는커녕 ‘꽃이 나를 한 번 더 오라 하는구나’ 생각했단다. 스님은 헤어지고 난 뒤 짧은 말씀 탓인지 자신의 사진인생을 네 줄 시로 정리해 팩스로 보내 왔다.
‘카메라를 걸머지고 산천을 헤맨 지 수십 년
돌이켜 보니 하루를 찍지 못했네
인생 한평생 찰나 간이라 했던가
색공 모두가 그대로 비로자나 법신인데.’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