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파란 눈의 國母’ 커스티 구스망
2003년 발간된 커스티 구스망 여사의 자서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남편 샤나나 구스망 현 총리와 함께 찍은 것이다.
포스코청암재단 ‘2011 청암상’ 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방문한 구스망 여사를 22일 만났다. 2000년, 2002년, 2004년에 이어 네 번째 방문이다. 그는 “폐허에서 다시 우뚝 선 한국에 올 때마다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되기 직전인 2001년 동티모르에 알롤라(Alola) 재단을 설립해 동티모르 여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했다. 그의 명함에는 ‘강한 여성, 강한 국가(Feto Forte, Nasaun Forte)’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알롤라 재단의 모토이기도 하다. 재단 이름은 1999년 동티모르 분쟁 당시 인도네시아 민병대원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14세 소녀의 이름을 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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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만난 구스망 여사는 “200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며 “식민지 전쟁 민주화 등을 경험한 한국의 성공이 동티모르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남편과의 첫 인연은 1992년. 호주 멜버른대를 졸업한 평범한 여성이던 그는 26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가 자카르타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편지 번역 일을 맡게 됐는데 편지 내용은 인도네시아 등 외국에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쓴 당사자가 동티모르 독립운동가인 현재의 남편이었다. 이미 시사잡지 등을 통해 동티모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스무 살 연상인 남편과 글을 통한 인연을 이어가며 점점 사랑에 빠졌다. 1994년부터는 감옥에서 남편을 직접 만나 정기적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사랑을 키워갔고, 그 자신도 ‘루비 블레이드’라는 암호명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존경했던 인물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혁명가로만 알았는데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출소 후 남편은 계속 혁명 활동을 했다. 2008년 2월에는 남편의 자동차가 총격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으며 가족 모두 납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알롤라 재단은 내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위해 여성의 정치 참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혹시 남편에 이어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건 아닐까. 구스망 여사는 “내겐 정치적 야망이 아닌 활동가로서 열망만 있을 뿐”이라며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