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 우려 커지자 통화 평가절하 뒷전…“수출보다 물가 잡을때” 각국 통화절상나서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던 주요국의 환율전쟁이 중동발 오일쇼크로 가라앉고 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지난해 9월 “미국이 국제 통화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된 환율전쟁은 G20 서울 정상회의 때 최고조로 격화됐다. 당시 주요국은 ‘경상수지 목표제’까지 들고 나오면서 과도한 통화가치 절하로 수출을 늘리는 중국과 미국을 겨냥한 코뮈니케를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3차 오일쇼크’의 우려를 불러온 중동발 시위에 환율전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유가 상승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치솟자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환율 하락)을 통해 수입물품의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의 원인 제공자였던 중국의 정책 변화도 환율전쟁을 한물간 이슈로 만들고 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바오바(保八·8% 성장유지 정책)를 포기함에 따라 중국 위안화는 7일 달러 대비 6.5651위안으로 17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수출 주도가 아닌 내수로 성장을 꾀하고 물가 안정을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았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은 지금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에 절정에 달했던 미국과 유럽의 중국에 대한 압박도 점점 줄어들면서 환율전쟁의 1막이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환율전쟁은 잦아들더라도 국제결제통화의 주도권을 둘러싼 통화전쟁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달러의 위상이 점점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로화를 국제통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다음 달 7, 8일 한국 중국 일본 언론인 15명을 초청해 ‘유로화의 국제통화 역할’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연다.
재정부 관계자는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그 빈자리를 놓고 위안화와 유로화가 각축을 벌이게 될 것”이라며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는 지난해 통화전쟁에서 올해는 기축통화의 패권을 놓고 겨루는 통화전쟁으로 국면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