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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존을 향해/4부]아름다운 재단과 함께하는 레인메이커를 찾아서

입력 | 2011-02-22 03:00:00

대대로 이어온 가업, 두 아들까지 8대째 한의학 이어… 인술 베푼 조상들 덕분
자자손손 이을 나눔, 가족기금 만들고 쪽방 봉사… 지속가능한 기부 하고 싶어




■ 윤영석 춘원당한의원장 가족의 기부 이야기

윤영석 춘원당한의원 원장과 부인 이윤선 한방박물관장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 동 한의원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윤 원장 가족은 가족기금을 통해 나눔 가풍을 만 들어 가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윤영석 춘원당한의원 원장(53)의 집에는 가훈 대신 오계(五戒)라는 게 있다. 부제는 ‘아버지가 주는 밥을 먹기 위해 자식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다. 첫째 한의사가 될 것, 둘째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줄 것, 셋째 거짓말하지 말 것, 넷째 인사를 잘할 것, 다섯째 담배 피우지 말 것. 여느 집과 다른 독특한 가훈은 할아버지 고 윤종흠 선생이 물려준 유산이다. 18일 찾아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진료실에는 조부의 초상화가 윤 원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7대째 가업을 이어 1984년에 병원을 물려받은 윤 원장은 오계에 따라 아들 두 명을 모두 한의대에 보냈다. 부인 이윤선 씨(52)도 춘원당한방박물관을 맡아 가업을 돕고 있다. 여기에 윤 원장 가족은 4년 전 가풍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대대손손 이어질 나눔의 가풍이다.

○ 은혼식 가족기금, 나눔의 씨앗으로

나눔의 시작은 미미했다. 2007년 3월 윤 원장 부부는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 대신 아름다운재단의 공익기금 중 하나인 가족기금을 만들었다. 초기 출연금 1100만 원. 아들 윤준걸 윤홍걸 씨는 용돈을 모아 각각 10만 원, 5만 원을 보탰다. 그렇게 ‘춘원당100년생각’ 가족기금이 태어났다.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방법을 몰랐어요. 그러다 아름다운재단 윤정숙 이사의 강연을 듣고 결심했죠. 은혼식 선물을 주고받거나 좋은 데서 밥 먹을 돈으로 시작한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줄 선물 대신 돈을 낸 거고요. 거창하진 않지만 능력껏 마음껏 모은 돈이죠. 그렇게 조그만 계기에서 출발하는 게 봉사 아니겠습니까.”

윤 원장은 말을 이어갔다.

“아내는 별것도 아닌데 부끄럽다며 인터뷰를 사양했습니다. 그걸 제가 설득했지요. 나눔이 이렇게 소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이후 이 기금은 한의원에서 판매하는 한약 수익금과 주차장 수입 등을 보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1억 원이 모인 지난해부터는 청소년 문신 제거 및 자립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그 덕분에 어릴 적 반항심리로 문신을 새겼던 아이들이 웃을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고액의 수술비용을 대지 못해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보다 가족기금의 효과를 톡톡히 본 건 윤 원장 가족이었다. 윤 원장 부부는 “일단 자기만족이 어떤 기부보다 컸고, 기금을 어떻게 모으고 쓸지 가족 간 대화가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효용은 아이들에게 나눔이라는 좋은 습관을 길러준 것이다.

“아이들을 포함해 8대가 가업을 이었다는 건 사회에서 상당한 은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인술을 베풀며 어디선가 덕을 쌓았기 때문이겠죠? 앞으로 9대 10대 대대손손 가업을 이어가려면 그만큼의 덕을 쌓아야지요. 가족기금은 덕과 습관을 쌓는 시작일 뿐입니다.”

○ “나눔이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

‘산꼭대기에 있어도 환자들은 명의를 찾아온다’는 가르침에 따라 춘원당한의원은 1950년대부터 돈의동에 터를 잡았다. 한때 ‘요정골목’이라 불리며 요정들이 줄지어 있던 이곳에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한의원과 그 옆의 쪽방촌. 윤 원장 가족은 가족기금을 모으는 한편 2007년부터 이곳 쪽방촌 주민 700여 명을 돕고 있다.

“처음에는 아주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했어요. 쪽방촌은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우리는 번듯해 보이잖아요. 좋은 차를 몰고 오니 괜히 시비를 걸기도 했고 차를 걷어차기도 했어요. 안되겠다, 쪽방촌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야겠다. 그렇게 출발했죠.”(부인 이 씨)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돈의동 ‘사랑의 쉼터’를 찾았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걸 물으니 ‘쌀, 김치, 목욕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쌀 대신 라면을 지원해 주면 술로 바꾸는 경우가 많고 쪽방에 씻을 곳이 없어 목욕권이 절실했다. 윤 원장은 그때부터 쌀독을 채우고 목욕권을 나눠주다 얼마 전부터는 자활을 하도록 현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익명으로 기부하다 이름을 밝힌 것도 최근이다.

이제 윤 원장 부부는 가족기금을 토대로 춘원당장학문화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가족을 포함해 변호사 회계사 등 가까운 지인 10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가족기금이나 재단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려는 이유는 뭘까. ‘지속 가능한 기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기부는 지속적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기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때면 괜히 했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족기금이나 재단을 통해서라면 더욱 지속적이고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대신 가족재단이기 때문에 가족이 충분히 상의해야겠죠. 자칫하면 재단 때문에 가족이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인터뷰 내내 그간 생각해오던 나눔에 대한 철학을 술술 풀어놓던 윤 원장은 나눔이 무엇일까 묻는 질문에도 거침없었다. 그는 ‘자식을 먼 데 떠나보내는 것’이라는 독특한 비유를 들었다.

“딸이 있으면 시집보내고 아들이 있으면 장가보내는 것이죠. 일단 떠나보낼 때 좋은 마음으로 보내야 합니다. 또 떠나면 잘살아야 하듯 돈도 좋은 데 쓰여야 하지요. 다만 한 번 보냈으면 지켜만 봐야 합니다. 자식 덕 보려고 시집보내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행복한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눔도 그런 거 아닐까요.”
▼ ‘맞춤형 가족기금’ 인기 ▼
하늘나라 남편 기리려… 자녀 출산 기념하려…

김지홍 씨(39·변호사)와 최경인 씨(38) 부부는 올해 1월 태어난 아들 이름을 따서 ‘김재윤사랑기금’을 아름다운재단에 개설했다. “아이가 자란 후에도 나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때문이었다. 매달 50만 원씩 모으고 있는 이 부부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어린이 지원사업에 기금을 쓸 생각이다.

최근 들어 가족의 이름을 따서 만든 가족기금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맞춤형 개인 및 기업 기금사업을 해온 아름다운재단에서는 최근 가족기금의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기부컨설팅팀 김현아 간사는 “설립 초기에는 성공한 개인이나 기업의 이름으로 만든 기금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가족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기금을 설립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 규모는 최소 1000만 원부터 50억 원까지 다양하다.

가족기금에는 독특한 사연들이 숨어 있다. 돌아간 남편을 기리기 위해 가족들이 만든 유가족 추모기금을 비롯해 다른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이 이름으로 기부하는 가족기금, 결혼기념일 생일 환갑 등 가정 내 대소사를 기념하고자 만든 가족기금들이 주를 이룬다. 또 춘원당한의원 윤영석 원장의 경우처럼 가족기금을 바탕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지도층이나 자산가들의 자선재단 설립 욕구도 커져 일부 금융권에서는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기부와 재단설립 컨설팅 전담자나 담당 부서를 두는 사례가 많다.

미국에서는 가족재단의 설립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가족재단의 3분의 1이 2000년 이후 설립됐다. 파운데이션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가족재단이 기부한 금액은 203억 달러에 이른다. 또 가족재단들은 다른 독립 재단과 달리 교육 건강 국제문제 등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한국은 가족기금 및 재단의 통계를 내기도 힘들 정도다. 설립절차가 복잡하고 행정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가족재단을 섣불리 만들려 했다가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김현아 간사는 “큰 규모의 가족기금 및 재단이 자리 잡은 미국과 달리 아직 초기 단계인 한국에서는 소규모의 기금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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