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가입 권유… 위험 설명 ‘나 몰라라’… 금지상품 ‘복제’■ 서울 시내 판매현장 가보니
17일 본보 증권팀 기자가 랩어카운트 상품 판매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찾은 서울 종로구 의 동양종합금융증권 종로지점. 랩 상품 상담에 앞서 송윤주 업무팀장(오른쪽)이 투자 정보 확인서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주고 있다.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통합법에 따라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작성해 본인의 투자성향을 파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서울 서대문구의 한국투자증권 판매사원은 여윳돈 5000만 원이 있다며 투자 상담을 받는 기자에게 이렇게 권유했다. 스폿랩은 판매가 금지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직원은 “랩은 환매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목표수익률이 달성되면 채권으로 보유하지 말고 바로 현금화하면 된다”며 “스폿랩은 금지됐지만 사실상 같은 상품”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투자자문사가 종목을 추천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자문형 랩어카운트) 시장이 과열 양상을 빚고 있는 가운데 판매 현장에서는 각종 위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증권사에서 펀드보다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고,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상품까지 내놓는 등 증권업계가 자문형 랩 고객 확보 전쟁에 들어갔다. 자문형 랩은 올 들어서 한 달 만에 약 2조2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 종로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서초구 일대 증권사 및 은행의 20개 점포에 고객으로 가장해 랩어카운트 판매 현황을 점검했다. 취재 결과 대부분의 증권사 점포에서는 자문형 랩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열 마케팅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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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미래에셋증권 창구에서는 투자정보 확인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몇 가지 랩 상품을 권했다. 직원은 “수수료를 내렸기 때문에 곧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 원으로 뛴다”며 “그전에 3000만 원에 가입하라”고 부추겼다. 이런 판매 행태는 은행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행에서는 그저 구두로 “위험 감수를 하는 편이냐”는 질문을 했을 뿐이다.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는 스폿랩이 퇴출되는 등 일부 자정 노력이 있었지만 최근 증권업계는 미래에셋 현대증권 SK증권 등 후발주자가 3%대인 수수료를 1%대로 크게 ‘할인’한 뒤 고객 유치전은 더욱 불이 붙은 상태다. 규정상 랩어카운트 상품을 팔지 못하는 은행들도 특정금전신탁 또는 사모펀드 형태로 유사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증권사가 ‘펀드보다 수익률이 좋다’는 점만 부각하고 투자위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 금감원, 파생상품 암행감사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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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특정 기간 내 일정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하거나 고객이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환매해도 된다’는 판촉행위는 스폿랩과 같은 것으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은 목표수익률에 도달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채권으로 바꾸는 목표전환형 랩 상품을 팔고 있다. 랩은 선취수수료가 비싼 대신 환매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목표수익률에 도달했을 때 현금화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증권사는 고객에게 “인기를 끌었던 스폿랩과 같은 상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 이처럼 자문형 랩 시장이 달아오르자 금감원은 자문형 랩 등 파생상품에 대한 암행감사(미스터리 쇼핑)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자문형 랩 시장이 커지면서 투자자문사도 2009년 말 108개에서 지난해 말 137개로 크게 늘었고, 현재 10여 개사가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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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과 스폿랩 ::
랩어카운트는 주방에서 쓰는 랩(wrap)처럼 주식, 채권 등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통합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서비스로 증권사가 투자자문사의 추천종목에 투자해주는 자문형 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폿랩은 ‘3개월에 10%’ 등 단기간에 사전에 정한 목표수익률을 달성시켜주겠다면서 판매한 단기투자랩으로 최근 판매가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