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구 도쿄 특파원
사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그에게 경제부처 장관을 권했다. 세제개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책 등 정권의 존망과 국가 장래를 좌우할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해 그에게 협조 요청을 보낸 것. 후지이 씨는 “격무인 장관을 맡기엔 건강이 좋지 않으니 차관 자리를 달라”고 자청했다고 한다. 그가 ‘모시는’ 관방장관은 46세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씨. 후지이 차관의 말처럼 자신이 일본 경제정책을 입안하던 시절에 에다노 장관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노(老)차관은 젊은 장관을 깍듯이 모신다.
일본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에다노 관방장관은 불과 5개월 전 집권 민주당의 최고 요직인 간사장에서 간사장대리로 ‘강등’됐다. 우리로 치면 집권당 사무총장을 하루아침에 사무부총장으로 내려앉힌 셈이다. 당사자에겐 수치일 법하다. 하지만 그는 찍소리 하지 않고 간사장대리를 맡아 후임 간사장을 보필했다.
자민당 정권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1991∼93년 총리를 지냈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씨는 2001년 한참 후배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경제난 돌파를 위해 경제통인 그에게 손을 내밀자 흔쾌히 재무상을 맡았다. 한국 정치풍토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본 민주당이나 자민당에선 국제국 청년국 등의 실무국장은 물론이고 부국장까지 대부분 국회의원이다. 초선이든 30대 나이든 상관없이 일단 배지만 달면 실무직함과는 담을 쌓는 한국 정치권과는 많이 다르다. 국회 경력 30년을 넘긴 50대의 한 일본 국회의원 비서가 건넨 명함에 그냥 ‘○○ 의원 비서’라고 적힌 것을 보고 “의원실에 비서 위의 직함은 없느냐”고 물은 적 있다. 비서 위에 비서관, 그 위에 보좌관이 층층이 있는 한국 의원실 조직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 비서의 답은 명료했다. “비서면 다 비서지 다른 직함이 뭐 필요한가요.” 일본 정치가 탈도 많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일 중심 실용주의’만큼은 꼭 배웠으면 한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