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탈수록 나빠지는 눈…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캄캄한 삶에 스키만이 빛…
양재림이 16일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 알파인 스키 여자부 시각장애부문 슈퍼대회전에서 안정된 자세로 설원을 내려오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양재림 씨(오른쪽)에게 소리와 몸짓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가이드 정고운 씨. 정고운 씨 제공
시작할 때만 해도 언니를 따라가지 못했던 재림 씨는 조금씩 재미를 붙여 갔다. 2년쯤 지났을 때 재림 씨가 물었다. “나, 언니보다 잘하죠?” 간절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재림 씨가 소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지난해 말 장애인스키협회를 찾았다. 여유를 찾은 재림 씨가 스키를 더 배우고 싶어 해 코치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협회 정인섭 전무는 최 씨에게 “개인 취미를 위해 코치를 붙여줄 수는 없지만 선수로 뛴다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무는 재림 씨를 병원으로 데려가 메디컬 테스트를 받게 했다. 근력, 지구력 등이 나무랄 데 없었다. 스키를 타게 했다. 폼이 좀 엉성했지만 며칠 만에 바로 잡혔다. 정 전무는 “선수 경험은 없지만 지금 실력으로도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은 가이드와 함께 스키를 탄다. 가이드는 선수 앞에서 소리와 몸짓으로 방향을 알려 준다. 정 전무는 딸 고운이를 재림 씨의 파트너로 소개해 줬다. 스키 명문 고성고 3학년인 고운 씨는 알파인스키 여고부 랭킹 1, 2위를 다투는 엘리트 선수다.
둘은 1월부터 호흡을 맞췄다. 스타일이 잘 맞았다. 재림 씨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정 전무는 “2014년 소치 겨울장애인올림픽에서 국내 스키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고운이는 “아버지의 권유로 가이드를 시작했지만 언니를 보면서 나도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라면 몰라도 선수로 뛰려면 힘들 거야. 지금보다 스키를 훨씬 많이 타야 하는데 남은 한쪽 눈마저 실명할 수 있어. 그래도 스키 선수 할래?”
엄마는 눈물을 쏟았지만 딸은 울지 않았다. 입술을 꼭 깨문 채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알아 엄마. 내 눈이 언젠가는 안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어요.”
재림 씨는 16일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 알파인스키 여자부 시각장애부문 슈퍼대회전에 출전했다. 출전자가 혼자라서 시범경기로 열렸고, 고운이가 전국겨울체육대회에 지역 대표로 출전했기에 임시 가이드와 호흡을 맞췄지만 재림 씨는 최선을 다했다. 정 전무는 “기록을 확인하고 놀랐다. 이번 대회 여자부 모든 장애등급을 통틀어 가장 좋다. 남자부와 비교해도 상위권에 속한다.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스키 선수 양재림’의 화려한 데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