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추모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열렸던 추모 사진전 전시 작품 속 고인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꼭 시성식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다 가신 분을 이 시대의 성인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더 그리워하며 닮고 싶어 하는 그런 분들 말이에요.” 오늘 아침 객실에서 함께 식사한 독일인 토마스 팀테 신부님의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사랑은 과분했다 하시고 베푼 사랑은 늘 부족했다고 고백하신 분, 썩 훌륭하진 않아도 조금 괜찮은 구석이 있는 성직자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그분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움직이게 한 걸까. 선종하신 이후에도 끊임없이 용인의 묘소를 성지 순례하듯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욕심 없는 사랑의 나눔과 겸손으로 일관된 삶이 남긴 감동과 향기의 여운 덕택이 아닐까 한다.
생전에 선물로 주신 묵주에서, 떠나시고 나서 기념으로 만들어 나눠 가진 사진엽서나 스티커에서 아직도 그분이 환히 웃고 계신다. 2007년에 직접 그리신 자화상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글씨에도 새삼 눈길이 간다. “추기경님, 제가 바보라는 두 글자로 2행시 지어 볼게요. ‘바라보면 볼수록 보물이 되는 사람’입니다” 하니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시는 것만 같다.
이해인 수녀
▼ 그분이 실천한 ‘생명 나눔’ 운동 뿌리내렸다 ▼
설립한 장기기증단체 작년 신청자 3만6569명… 20년간 신청자보다 많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당부한 ‘생명 나눔’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김 추기경은 선종 직후 각막을 기증해 환자 2명의 눈을 밝힘으로써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생명 나눔’을 실천했다. 김 추기경의 헌신으로 2009년 장기기증 희망자는 전년보다 2.5배 증가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앞둔 15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병원과 공인 장기기증 등록단체에 신청서를 낸 장기기증 희망자는 모두 12만4387명(골수기증 희망 제외)으로 전년도 18만5046명보다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기증 희망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신청자는 예년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규모다. 2005∼2008년 장기기증 희망자는 7만∼9만 명이었다. 센터는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자가 12만 명을 넘은 것은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며 적극적인 동참이 이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역시 2010년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6만7656명으로 2009년 14만886명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2008년 5만9741명보다 늘었다고 밝혔다. 운동본부의 이원균 사무국장은 “2010년이 2009년에 비해 신청자가 줄긴 했지만 3년 전에 비해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장기기증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많이 줄었고, 장기기증 캠페인을 선뜻 같이하겠다거나 먼저 제안하는 기업, 학교 등 기관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에 따라 장기기증 수요가 늘어난 곳도 눈에 띈다. 김 추기경이 설립한 장기기증 단체인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본부장 김용태 신부)는 지난해 장기기증 신청자가 3만6569명으로, 전년도 3만4079명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를 통해 1989년부터 2008년까지 신청했던 장기기증 희망자는 3만3432명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 뒤 이 단체의 1년간 신청자는 지난 20년 동안의 신청자와 비슷한 셈이다. 이 단체의 윤경중 생명운동부장은 “생명 나눔은 고귀한 선행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장기기증 참여 열기가 계속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