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대본★★★★ 연기★★★★ 연출★★★☆
‘늘근도둑이야기’의 속 좁고 한심하고 순진하면서 어수룩한 두 도둑은 열심히 살지만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삶을 사는 소시민의 모습과 닮았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절도 전과 18범인 ‘더 늙은 도둑’(김승욱)과 사기 전과 12범인 ‘덜 늙은 도둑’(오용)은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 미술품으로 가득 찬 공간에 ‘한탕’하려고 잠입한다. 하지만 금고를 앞에 두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잡혀 수사관(이희준)의 조사를 받는다.
관객은 곧 이들이 도둑질을 포함해 인생에서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는 한심한 인물임을 짐작하지만 ‘큰 도둑들’이 주름잡는 세상에서 오히려 우리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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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탓일까. 더 늙은 도둑이 역대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을 거명하며 ‘유명한 분들은 다 별을 달았다’고 상기시키는 부분보다 덜 늙은 도둑이 젊은 시절 실패한 사랑을 회상하며 주억거리는 대사가 더 가슴에 꽂힌다. “그래도 사나이 일생에 불같은 사랑 한번 해봤으니 후회는 없소. 다 꿈이우, 난 산다는 게 꿈이라면 좋겠소.”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1시간 40여 분 동안 끌어가는 것은 연기의 힘이다. 특히 두 도둑이 수사관의 신문을 받을 때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고 번갈아 말꼬투리를 붙잡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은 ‘언어 곡예’에 가까웠다. 수사관과 취객으로 1인 2역을 펼친 이희준 씨의 술 취한 연기는 이 부문 상을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로 실감났다.
전체적으로 어떤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보여줌으로써 연극은 오히려 생생한 리얼리티를 얻는다. 웃음의 순도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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