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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탱크에 시위대가 올라설 때

입력 | 2011-02-02 03:00:00


1960년 4월 19일, 이날 하루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하고 6026명이 부상했다.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한 건 경찰이었다. 시위대가 경무대로 향해오자 다급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군을 동원했다. 계엄사령관이던 송요찬 장군은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했다. 시민은 이런 군을 환영하고 진주한 탱크에 올라타 구호를 외쳤다. 어느 나라에서나 진압군 탱크에 시민이 올라가 만세를 부르는 상황이 오면 아무리 강한 독재정권도 유지될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1주일 뒤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집트에서 장기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통행금지가 선포되고 군대가 배치됐는데도 시위대의 성난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시위대가 탱크를 앞에 두고 기도를 올리고 탱크에 올라 정부를 비판하는 글씨를 써도 군인들은 저지하지 않았다. 한 군인은 시위대를 향해 “우리 역시 여러분처럼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복무한다”라고 소리쳤다. 시위대가 탱크에 올라서면서 이집트의 민주화는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옛 소련과 중국의 민주화는 탱크 앞에서 갈렸다.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연방의사당 건물 앞에서 자신을 체포하러 온 탱크 위에 올라가 공산당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무효임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1989년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국가주석은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의 강경 진압을 명령했다. 광장에 진입하는 탱크 앞을 한 청년이 홀로 막아섰지만 무력했고, 중국의 민주화는 좌절됐다.

▷근대 국가의 군대는 국민의 군대다. 과거 왕국의 군대는 돈벌이가 목적인 용병이었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궁으로 폭도들이 난입했을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위병은 스위스 용병이었다. 혁명 이후에야 시민의 의무로서 군인이 되는 시민군이 만들어졌고 왕국(royaume)은 국민국가(nation)가 됐다. 국민국가의 군대는 적국을 향해 총을 쏠지언정 국민을 향해 안으로 총을 겨누지 않는다. 군심(軍心)이 민심(民心)이 될 때 독재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