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 무대에 서는 대한민국 재즈 1세대 뮤지션들
재즈클럽 ‘문글로우’에 함께 모인 ‘한국 재즈 1세대’ 연주자들. 왼쪽부터 신관웅, 최선배, 김준, 류복성 씨. 이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하자 즉석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 ‘Hello Dolly’를 연주해 보였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재즈계에서 후배들로부터 ‘선생님’으로 통하는 이들은 클럽과 각종 공연 무대에서 여전히 따로 또 같이 활동 중이다. 28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브라보 재즈 라이프’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주요 출연자들인 ‘대한민국 재즈 1세대’ 7명이 주축이 되는 무대다. 테너 섹소포니스트 김수열 씨(73)와 재즈 클라리네티스트 이동기 씨(75), 여성 보컬 박성연 씨(68) 등이 이들과 같이 공연한다. 또 이정식(섹소폰), 말로(보컬), 임헌수(드럼), 장응규(베이스), 임인건(파이노), 이한진(트럼본), 김예중(트럼펫) 씨 등 쟁쟁한 후배들이 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함께 무대에 선다.
문글로우가 문을 닫는 것은 원로 연주자들에게 단지 클럽 한 곳이 문을 닫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이들이 설 무대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물론 직접 클럽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아직도 많은 곳에서 초청을 받는 그들이지만, 이들이 ‘대한민국 재즈 1세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문글로우에서 시작됐다.
얼마 동안 ‘답답한 현실’에 대한 푸념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재즈 예찬’이 꽃을 피웠다. 김준 씨가 “재즈의 세계에는 ‘겨룸’이 없다”고 화제를 바꿨다. 그는 “다른 장르는 연주자들끼리 경쟁의식이 있는데 재즈 연주자들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좋다”며 “재즈 뮤지션이 가장 원하는 것은 수준이 비슷한 연주자들끼리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하려면 연주자 개인이 부단히 연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류복성씨는 “재즈는 세계를 정복한 음악”이라며 “평생 재즈 연주자라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평생 재즈만을 생각하고 또 연주해온 이들에게 재즈란 무엇일까. 우문(愚問)에 돌아온 것은 현답(賢答)이었다.
“재즈는 곧 나.”(신관웅)
“재즈는 늙지 않는다.”(류복성)
“재즈는 지구 최상의 음악이며,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내가 재즈를 택한 이유다.”(김준)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한 대목. 공연을 목전에 둔 두 원로 연주자의 대화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에서 단 1개의 상영관, 서울 서대문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만 상영되고 있는 영화다. 그나마 오전 11시 시작으로, 하루에 단 1차례만 볼 수 있다. 직장인이 평일에 보기에는 참 어려운 시간대다.
12일 찾아 본 영화관에는 10여 명 남짓 관객이 영화 시작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입장하면서 혹시 ‘유일한’ 관객이 아닐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수다. 영화가 끝나고 출연자들의 이름이 은막에 새겨질 때 몇몇 관객이 박수를 보냈다.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의 상황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른바 ‘대한민국 재즈 1세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를 통해 대중은 그동안 은둔하고 있던 줄로만 알았던 원로 재즈 뮤지션들이 사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록 그 활동이 고독한 가운데 이어져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외롭고 괴로울 때는 난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난 블루스를 더 잘 부를 수 있게 될거야.”(영화 속 박성연의 독백)
그러나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젊은 연주자 두 명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트럼본 연주자 서정연 씨와 트럼펫 연주자 김예중 씨가 신 씨와의 합주를 위해 무대에 섰다. 역시 이날 문글로우를 찾은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제작자인 황태연 씨는 “문글로우를 살리기 위해 거의 매일 후배 연주자들이 무보수로 공연을 하고 간다”고 귀띔했다.
이날은 최선배, 김준, 류복성 씨도 함께 무대에 올라 즉석에서 호흡을 맞췄다. 김 씨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What a wonderful world’ 와 ‘Hello Dolly’를 열창했다. 연주자들이 저마다 기량을 뽐낸 ‘Take Five’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어쩌면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무대에서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정적이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