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사실 요즘의 추위와 눈은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60, 70년대에는 예사였지 않았나 싶다. 칼바람은 어찌나 매섭던지, 눈은 또 어찌 그리 자주 내리던지. 동네 골목에서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스키로 눈을 지쳤고 논에 물 대어 얼린 얼음판에서 노상 스케이트나 썰매를 탔다. 꽁꽁 언 한강대교 아래 얼음판 위로는 긴 장대를 양팔에 끼고 건너던 사람도 보였다. 내복과 장갑은 누구에게나 필수품이었고 삼한사온은 달력만큼 정확했다.
올겨울은 그런 옛 겨울의 모습을 닮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모처럼 되돌아온 이 춥고 눈 많은 겨울이 ‘자연으로의 복귀’인지 아니면 ‘이상기후의 징후’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 복귀는 아닌 듯해 걱정스럽다. 눈 없고 따뜻한 겨울이 20년 이상 지속돼서다. 할리우드판 재난영화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를 봤다면 이게 지구 빙하기의 전주곡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망상을 떠올릴 수도 있고.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는 ‘잠수함의 흰 토끼’가 등장한다. 산소가 희박해질 경우 흰 토끼부터 죽는데 그것은 5, 6시간 후 산소 고갈로 모두 절명함을 뜻한다. 지구는 잠수함이고 인류는 잠항 중인 잠수함의 승무원이다. 잠수함 시계는 이미 25시를 향했고 흰 토끼의 호흡은 벌써부터 가쁘다. 이런 비관론이 내게는 자연스럽다. 취재차 지구 곳곳을 누비며 자주, 또 가까이서 병든 지구의 환부를 목격해서다. 매년 이맘때쯤 니세코와 묘코 고원(일본 홋카이도와 니가타 현의 스키마을)으로 철새처럼 이동하는 수천 명의 호주 스키어의 모습에서 나는 아픈 지구의 병색을 읽을 수 있다.
병든 지구를 구하는 일.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건강한 지구’는 미래에 물려주어야 할 ‘인류 유산’이어서다. ‘나부터, 나 혼자서라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십수 년 전 시작한 게 있다. 호텔에서는 큰 수건을 쓰지 않고 집에서는 난방을 최소화(평균 17도 유지)한다. 3∼4km는 당연히 걷고 출장 취재 외에는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지면에도 버스 열차패키지나 트레킹 같은 여행을 골라 소개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병구완은 자식의 도리다. 지구도 같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