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늑대 파랑 윤이형 지음 332쪽·1만1000원·창비
윤이형 씨는 좀비, 사이보그, 컴퓨터 프로그램 등 이질적 타자들을 소설에 등장시킴으로써 사회체제가 지닌 문제를 환기한다. 사진 제공 창비
흥미로운 점은 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 가령, ‘비평가와 작가 100명이 뽑은 가장 좋은 소설’(2007년)에 선정됐던 표제작 ‘큰 늑대 파랑’이 그렇다. 대학 동창인 사라, 정희, 재혁, 아영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가상의 이미지 ‘파랑’을 만들어낸다. 늑대의 모습을 갖춘 파랑은 재앙이 닥치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도록 프로그래밍됐다. 도시에 좀비들이 나타나자 컴퓨터 밖으로 나온 파랑은 자신의 부모인 사라와 정희, 재혁을 구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좀비가 돼버린 상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아영을 만난 파랑은 아영을 옛 남자친구 K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기성 문법을 벗어난 이질적인 서사에 독자들이 곤혹스러워할 만한데, 여기에 현실의 무게감을 얹어놓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그 사람들처럼 거리로 나가 싸워야 한 걸까? 그때 그러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재미있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창피하게 이게 뭐냐고?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거야? 정희의 말은 아영이 가끔 읽는 자기계발서 속 문장들보다도 앙상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공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평론가 백 씨는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것의 핵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윤이형 소설이 보여주는 중요한 신념이지만, 그것이 장르서사의 실험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추구될 수 있을지는 작가가 계속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 묵직한 고민을 어떤 낯선 방식으로 표출해낼까.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