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주 팝페라테너
올해로 만 25세를 맞은 한창 나이에 종합검진이라니 어색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필자의 별명인 ‘애늙은이’를 거론하며 웃는 분도 있을 듯하다. 어렸을 때 자주 아팠던 기억 때문에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몸이 재산이고 악기’인 직업 탓이 크다. 여느 음악인이 그렇듯 연말 빡빡한 공연 일정을 소화한 뒤 악기(나에게는 몸)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작업이랄까.
건강검진을 받은 얼마 뒤 50대 이하 한국인은 세대를 막론하고 절반 가까이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생존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수명은 100세 시대를 맞았지만 사회의 모든 제도 및 시스템과 국민 인식은 여전히 80세 시대에 머물러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육체에 대한 건강검진만 할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자가검진을 해 봐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문명의 축복, 준비 없을땐 저주로
음악을 전공한 나는 다른 동갑내기에 비해 어려서부터 진로를 명확하게 정했다. 일반 중학교가 아닌 예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악을 공부했다. 같은 전공의 음악가와 비교하더라도 10∼15년 빨리 사회에 진출했다. 12세에 성악가로 국내무대에 데뷔했고 17세에는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요즘에는 젊은 음악가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내가 데뷔할 당시 음악계 풍토에서는 빠른 편이었다. 올해 국내 데뷔 13년차, 세계 데뷔 8년차로 나름대로 베테랑 음악가가 됐다.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21세기를 살면서 이렇게 한 우물만 쭉 파왔으며 또 계속해서 판다는 사실이 지금 시대에 걸맞게 잘 사는 걸까. 물론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권위자 혹은 장인이 되는 일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가치 있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인생의 긴 여정 속에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명예롭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행복하다. 하지만 인생이 길어진 만큼 우물을 파는 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변주가 필요하지 싶다.
이를 위해 나는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금은 음악인 임형주로 불리지만 언젠가 은퇴할 즈음에는 문화예술 사업가로 공식 직함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아트원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일,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일 모두 또 다른 인생에 대한 꿈 때문이다. 미국의 가수 배우 감독 제작자 등 다양한 직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팔방미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처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남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만 같은 절박감도 있다. 다른 사람보다 ‘영광의 기억’이 더 화려한 만큼 상실도 크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꿈 이룰 기회 더 많아
인간은 오랫동안 불로장생을 꿈꾸며 어리석은 일을 많이 했다. 중국 진시황제는 자신의 무병장수와 불로장생을 빌며 전국의 명산에 방사를 보내 약을 구해 오게 하고 신변보호를 위하여 아방궁을 지었다. 이런 처절한 몸부림과 달리 그는 장수는커녕 단명에 가까운 삶을 살다 갔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신이 우리에게 귀한 시간을 늘려주는 일은 우리가 원하는 꿈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발전적인 100년을 살 것인가, 아니면 목표 없이 허송세월하다 말년에는 몸져누운 채로 100년을 마감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손에 달렸다. 새해, 각자 삶에 대한 건강검진을 제안해 본다.
임형주 팝페라테너